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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하) 5·18학살에 관여한 계엄군의 고백·사죄 이어져
입력시간 : 2019. 01.11. 00:00


"주남마을에서 사살된 시신들 사이로 그 학생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자주 눈에 띄었던 여학생이었기에 기억났습니다. 괴로웠습니다. 미안합니다.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싶습니다".

80년 광주 5월 학살에 관여했던 계엄군들의 고백과 사죄가 계속되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재단내 '고백과 증언 신고센터'를 찾아오는 머리가 하얗게 센 군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기념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문을 연 신고센터를 방문해 5·18 민주화운동 관련 진술과 제보를 남긴 이는 지금까지 100여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파견됐던 계엄군 군인들이 20여명에 달한다.

신고센터는 5·18 진상규명에 필요한 당사자 증언을 듣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날 이후 3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이 저지른 참상을 망각하는 대신 괴로워한 양심적인 군인들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부대는 3공수여단, 7공수여단, 11공수여단, 20사단, 31사단 등이다. 상무대나 보안대 등 시민군이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신고센터에 전해진 한 軍 관계자의 이야기는 오랜 괴로움을 담은 소회였다. 당시 20사단 간부였던 A씨는 80년 5월 23일 화순으로 가던 버스를 타고 있다가 계엄군의 소총 난사에 사망한 고(故) 박현숙(당시 19세·여) 학생을 회고했다. 그는 동구 주남마을 부근에서 사살된 시신들 틈에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있던 학생 신분의 그를 떠 올리고 "사죄하고 싶다"는 뜻을 털어 놓았다.

기념재단은 앞으로도 신고센터를 통해 유의미한 증언과 고백들이 계속 접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증언이나 고백, 양심선언은 지난해 제정된 '5·18 진상규명특별법'에 근거해 출범할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집단발포 명령체계, 시민학살 경위, 행방불명자 신원과 규모, 암매장 정보 등 센터가 당시 군인들로부터 듣고 싶어하는 증언이나 양심 고백 등은 적지않다. 일반 사병보다는 상부 지시를 직접 받았을 하사관·장교들의 증언 등이 특히 절실하지만 쉽지 않은 여건이다. 제보를 하기 위해 센터를 찾는다는게 부담이 되고 자칫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기념재단은 이를 감안, 제보자의 신원을 최대한 보장해 사연을 청취하고 있는 중이다.

그날의 참혹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더많은 제보와 증언·고백 등이 이어져야 한다. 이는 5·18에 대한 더 이상의 왜곡과 비방을 막는 차원에서도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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