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재의 세계문화기행

민경재의 세계문화기행- 인도의 쿰발가르와 라낙뿌르가 만들어준 멋진 인연

입력 2018.12.07. 00:00
성벽 길이 36㎞의 철옹성 '인도판 만리장성'
쿰발가르 성안에는 360여개의 사원을
비롯한 궁전, 정원, 계단식 우물 등이 있는데,
상당수는 파괴되고 그 흔적들만이 남아있다.
물론 궁전과 가볼만한 사원들도 여럿 있는데,
특히 대표적인 사원으로는 '시바'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쿰발가르성. ⓒ민경재

연착으로 악명 높은 인도의 철도 시스템과 어울리지 않게, 델리로부터 인도 서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혼여행지로 꼽히는 라자스탄의 우다이뿌르(Udaipur)까지의 밤기차는 정시출발에 정시도착이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감동이다. 아침 7시, 이른 시각이지만 짐을 맡겨둘 참으로 예약해 둔 숙소로 향한다. 숙소는 여행앱에서 평가가 좋더니 역시나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고 게시판의 정보도 알차다. 게시판을 훑어보니 아침에 출발하는 우다이뿌르 근교 패키지 여행이 있다. 쿰발가르(Kumbalgarh)와 라낙뿌르(Ranakpur)라는 곳을 다녀오는 프로그램이다. 이곳들을 방문하기에는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패키지를 이용해야 하는데, 마침 당일 출발이 가능하다고 한다.

곧바로 카운터에서 예약하고 9시에 출발이라기에 서둘러 약속장소로 이동했는데, 여행용 택시는 9시 30분쯤에서야 나타난다. 같이 여행을 함께할 친구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Gabi", 포르투갈에서 온 커플 "Nuno"와 "Lisa", 캐나다에서 온 "Usha", 그리고 인도 콜카타에서 온 "Debjani"다.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환상의 멤버 6명이 꾸려졌다.

#그림1중앙#

처음 간 곳은 우다이뿌르에서 3시간 정도가 걸린 쿰발가르(Kumbalgarh) 요새이다. 이 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성벽길이가 무려 36킬로미터이고 성벽의 두께가 2미터로 만리장성 다음으로 긴 성벽이다. 인도판 만리장성인 것이다. "라자스탄(Rajasthan)"이라는 곳은 인도의 서쪽 지역인데, 예로부터 인도가 통일제국이 되는데 커다란 장애가 되었던 지역 중 한 곳이다. 워낙 이 지역 고유의 왕국들의 힘이 강했던 탓이다. 직접 와서 성을 보니 그럴만하다. 인도에 사는 Debjani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은 그나마 산에 나무들도 있고 그러는데, 몇십년전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막이었다고 한다. 가히 접근성에 있어서 철옹성이었겠다.

#그림2중앙#

쿰발가르 성안에는 360여개의 사원을 비롯한 궁전, 정원, 계단식 우물 등이 있는데, 상당수는 파괴되고 그 흔적들만이 남아있다. 물론 궁전과 가볼만한 사원들도 여럿 있는데, 특히 대표적인 사원으로는 "시바"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다. 그런데 사원 바로 옆에서 동네 아이들이 크리켓을 하며 놀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유산에서 이렇게 놀아도 되는가 싶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사람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말 그대로 관광지로만 남아버린 사원이라면 그것도 문제겠다 싶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목재 건축물, 그리고 흙과 돌로 된 다리와 같은 문화유산들이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오히려 붕괴의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공간들도 본연의 기능이 있고 그에 걸맞는 사람의 출입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보호라는 이유로 통제를 다반사하여 그 기능들을 멈추게 하면 결국엔 존재의 가치(기능)가 사라지게 되어 자연스레 문제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사물의 이치가 그런 것 같다. 약간 확대 해석한 면은 있지만, 이런 측면에서 살핀다면 아이들이 주변에서 놀고 있는 이곳의 사원들이 꼭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3중앙#

성벽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이동하는데 운전사는 제법 고급스런 식당으로 안내한다. 모두가 여러 음식을 주문해서 나누어 먹자고 하는데, 나로서도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으니 당연히 동참이다. 그런데 가격이 조금 비싸다. 아! 이럴수가! 이 친구들, 비싸다면서 디스카운트를 시도하더니 성공해낸다. 인도 식당에서 디스카운트가 가능함을 알았다. 식사를 하며 외국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들 인도에서는 흥정 때문에 스트레스란다. 여행책자를 보면 그 협상의 과정을 즐기라는데 그게 항상 쉬운 일만은 아니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기준 가격을 알고 있으면 협상이 가능한데, 여행객들에게는 그것이 쉽지가 않다. 결국 정보의 부족으로 속임의 대상이 되기 쉬운데, 물가가 저렴하니 그 손해 받은 액이 수인한도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그러나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은 치팅, 속임을 당했다는 바로 그것이다.

식사 후 들른 곳은 쿰발가르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진 라낙푸르(Ranakpur)의 자인교(자이나교) 사원군이다.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자인교 사원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일설에는 자인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Mahavira)와 싯다르타가 동일 인물일 것이다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통설에 따르면 자인교는 싯다르타와 동일시대를 산 마하비라가 기원전 6세기경, 형식에 치우친 베다 의례 중 '동물 희생제'를 반대하며 불살생(아힘사, Ahimsa: 간디가 중요시 했던 가치 중 하나이다)을 핵심 교리로 해서 만든 종교라고 한다.

한참을 경이에 차서 둘러보다 쉬다 하는데, 하이얀 대리석 건물이 붉은 빛에 물들어간다. 못내 아쉽지만 우다이뿌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투어를 마치고 우다이뿌르에 도착하니, 누군가 "월드뮤직페스티벌"이 있다면서 함께 하자고 한다. 모두가 비슷한 마음인가 보다. 헤어지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그곳에 함께 가 축제의 음식을 즐기며 각국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박수도 치면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공연이 끝나 작별 인사를 하며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한다. 다만 예전과 달리 요즘은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있으니 그 인연을 정말로 이어갈 수 있으니, 이것도 행복함이다. 숙소에 오는 도중에 Gabi는 나를 자신의 숙소로 데리고 가더니 앨범을 선물해준다. 알고 보니 그녀는 아르헨티나에서 꽤 유명한 탱고 가수였다. 여행이 맺어준 인연이다.

#그림4중앙#

민경재는

지적재산권법을 전공한 법학박사로 전남대에서 저작권 및 산업재산권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기술과 문화 그리고 법의 상호 어울림과 합리적 조정을 통한 디지털시대에 부응하는 저작권법과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여행과 예술, 아름다움과 자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전세계를 여행하는 노마드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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