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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지도자의 조건
입력시간 : 2018. 12.06. 00:00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

박근혜씨가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 이른바 '빵 사건'이 밥상머리에 오른 적이 있다. 여당 대선후보 자격으로 광주에서 가진 간담회 자리였다.

내용인즉슨, 박이 대학 재학시절 그를 따라다녔던 얼치기 남학생 관련 얘기다.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남학생은 박이 교정에 나타날 때마다 꽁무니를 따르며 "저랑 빵 드실래요"라고 졸랐다는 것이다. 변변한 카페도 없던 시절이니, 빵 먹자는 얘기는 요샛말로 데이트를 신청한 셈이다. 난처했던 박은 끙끙대다가 이 사실을 고스란히 절대 권력자에게 전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어느 날 박이 교정에 나타나자 그 얼치기 청년은 어김없이 뒤를 따르며 빵을 먹자고 하는데, 상황은 급반전이다. 검은색 세단에서 내린 검은 양복 차림의 장정들이 빵 한 박스를 청년에게 내던지고 유유히 떠나면서 하는 말이 "빵 많이 드세요"라는 것이었다는 에피소드다.

무거운 정책공약 대화들 사이로 '이 에피소드가 사실이냐'고 던진 연성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던 박의 맹한 얼굴 표정이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철 지난 얘기를 장황하게 꺼내는 이유는 이처럼 세상물정도 모르고 세상과 철저히 단절됐던 이가 훗날 일국의 지도자가 됐으니,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수구 적폐세력에 갇혀 지금의 꼴을 가져온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경우는 다르고 개인의 퍼스낼리티에도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최근 광주에서도 결코 웃지못할 사건 하나가 입길에 오르고 있다. 속된 표현으로 '웃픈 얘기'인데,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보이스피싱 사건과 관련한 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한 편으론 안타깝고, 한 편으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의문이 들게 하는 사안이다.

처음엔 광주시장까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니, 참 험한 세상이구나, 이런 정도였다. 윤 전 시장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40대 여성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해 4억5천만원을 날렸다는 게 주된 팩트였다. 피해금액이 과하긴 했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동정심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묘한 쪽으로 흘렀다. 사기범의 자녀를 광주시 산하기관의 임시직으로, 모 중학교 기간제교사로 채용시키는 데 윤 전 시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에서, 일순간에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더구나 수사기관은 돈이 건네진 시점이 지방선거 경선 즈음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금융권 대출 이외 자금의 출처와 대가성 여부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기실 이번 사건이 보이스피싱에 머물렀을 때만 해도 윤 전 시장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동정론이 컸다. 평생을 시민사회운동에 헌신해 오면서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의 대부로서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이나 힘겹게 살아가는 활동가들을 돌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안과 의사였으면서도 평생 모은 재산이 6억원 남짓에 불과했다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었던 윤 전 시장으로서는 희대의 사기범 꾀임에 혹 했을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단순히 보이스피싱 피해에 그치지 않고 취업비리나 그 이상의 혐의에 연루돼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기범이 '1인2역'에, '혼외자'까지 거론하며 사술을 부린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취업비리는 이 시대의 중대 사안이다. 광주시장 재임 시절 그가 공을 들였던 청년일자리 정책과도 역행하는 대목이다. 보이스피싱을 넘어 취업비리에까지 개입됐다면 '과연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은 자연스럽다.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다수 광주시민들의 실망과 속상함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우리들의 손으로 뽑은 시장이, 어수룩하게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도 모자라 취업비리 혐의에 연루되고 또다른 의혹까지 받게 됐다는 점에 상실감이 크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사안을 꿰뚫어 보는,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을 가져야 하는 것인데 과연 그만한 혜안이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개인 윤장현이라면 몰라도, 한때 150만 광주시민을 대표했던 지도자 윤장현으로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몸담았던 시민사회 진영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민주성지 광주의 자존심, 시민들의 명예를 무너뜨렸다는 자괴감이다. 한국투명성기구는 "광주시민의 자존감을 훼손한 부끄러운 일로, 시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참여자치 21은 자진해명과 함께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윤 전 시장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다.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 해명하는 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혹을 잠재우는 해법이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문구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지도자 윤장현, 그는 착하고 순진했던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것인가. 진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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