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박석호 입력 2018.11.15. 00:00

박석호 경제부장

어느덧 올해도 달력이 두장 밖에 남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마지막 단풍을 보기 위해 동네 앞산에 오르지만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쉽게 피로해지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 우울해 진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다들 암울하다 못해 서글픈 것 같다. 직장인들은 팍팍한 삶 때문에 술 한잔에 의지하고, 주부들은 치솟는 아파트 가격과 물가에 아우성이다. 경기 부진을 견디지 못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폐업이 줄을 잇고, 청년들이 직장을 찾아 고향을 등지고 타 지역으로 떠난다는 보도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한다.

광주·전남지역 경제가 끝도 모를 정도로 가라앉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가장 심각하다. 수치를 통해 지역경제를 들여다보자. 어느 것 하나 좋은 것이 없다. 지난달 광주 제조업 체감경기는 1년 5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부진으로 광공업 생산에 이어 수출까지 줄어드는 등 경기침체가 확산되고 있다. 광주의 개인사업자 폐업률은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가장 높고 청년실업률도 상승 추세다.

지역경제 위기는 경제의 중심축인 지역기업들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기업들은 경영 악화로 투자와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이것은 소상공인 불황과 가계 소득 감소 등으로 연결되며 지역경제를 전반적인 침체의 늪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인들은 외제차를 타고, 비싼 밥을 먹고, 평일에 골프를 치는 등 '한량'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십년간 운영해 온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은행을 찾아다니고, 사채까지 빌려 쓴다. 모든 지역기업인이 '착한' 기업인은 아니다. '불량' 기업인도 있지만, 일부 때문에 모든 기업인이 매도돼서는 안된다.

그들은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가장 큰 원인은 경쟁력 부족이다. 21세기 세계경쟁시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고 타성에 젖은 경영을 해 왔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을 등한시해 왔고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한 대응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 것이 전부일까? 지역사회의 책임도 크다. 기업인을 돈만 쫓는 장사꾼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하다.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어도 "탈법과 불법으로 돈을 번 것 아니냐"며 수근거린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기업인들의 의욕을 떨어뜨린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인은 "우리 속담에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지역은 성공한 기업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는 경향이 높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런 반 기업인 정서는 지역 향토제품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진다.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광주은행, 보해양조 등 지역제품의 지역시장 점유율은 타 지역에 비해 낮다. 특히 지역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편견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본보는 광주형 공동브랜드인 'city of peace'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 수준을 조사했는데, 100명의 응답자 중 1명만이 '들어봤다'고 답했다. 광주시와 지역중소기업이 낮은 중소기업 제품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지역민들은 관심 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역 주택업체가 아파트에 지역 제품을 넣으려고 하지만 입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한다. 몇일 전 오랜만에 지인과 식당을 찾아 소주 한잔을 했다. 술 안주를 주문하자 종업원은 안주와 함께 대기업 소주를 들고 왔다. 고객에게 "무슨 술을 드실까요?"라고 묻지도 않고. 우리 테이블만 제외하고 5개 테이블에 놓은 소주는 모두 대기업 제품이다.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지역 기업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 봉사 등을 강하게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우리가 지역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구매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역기업을 지원해야 할 지자체 태도도 안일하다. 대규모 행사가 있으면 지역기업에게 손을 벌리지만, 그들이 어려울 때는 무관심했다. 지역민들에게 지역제품을 애용하라고 하면서도 지역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희망찬 새해와 연말이 다가오지만 지역기업인들은 외롭고 쓸쓸하다. 매일 매일 생존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내일이 없고 오늘만 있을 뿐이다. 일부는 지역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누가 고향을 등지고 싶겠는가.

이번 주말 광주유스퀘어에 있는 광주형 공동브랜드 홍보관을 가보자. 대기업 못지 않은 품질 좋고 가격 저렴한 지역 중소기업 제품을 만날 수 있다. 기업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말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이다. 바람 앞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역사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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