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진의 어떤 스케치- 라떼파파, 아이는 누가 키우는가

@조덕진 입력 2018.10.23. 00:00

비현실적이다.

평화로운 호숫가,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공원, 자동차들이 아우성대는 도심 거리를 아빠들이 유모차를 끌며 걷고있다. 집 근처 골목에서, 공원에서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햇볕을 호흡하는 남성들, 평온함과 아늑함이 가득하다. 유모차 끄는 아빠들의 비현실성은 스톡홀름의 '일상'이라는데 있다.

스톡홀름에서 유모차 끄는 남성은 특별할 것도, 이채로울 것도 없는 그들의 생활이다. 유모차를 끌며 커피라테를 즐기는 남성을 일컫는 '라떼파파'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이니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인 셈이다.한국언론재단 디플로마(사회복지) 마스터 과정으로 찾은 스웨덴, 특별한 나들이에나 그나마도 유모차 끌고 다니기도 어려운 나라에서 온 방문객에게 이 일상이 비현실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스웨덴 남성들은 유독 유모차를 많이 끄나, 이곳 남성들은 인근 유럽이나 다른 나라 남성들보다 유달리 여성을 배려하는 성향이 있는가. 스웨덴 남성의 특성과는 관련이 없다, 관련이 없다고 하기도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유모차 아빠는 스웨덴만의 풍경이 됐으니, 라떼파파는 스웨덴 남성들의 문화이자 특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떼파파는 전통적인 남성상이라기보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스웨덴 복지정책이 만들어낸 현대의 풍경이다. 여성들의 사회활동,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출산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결과물이다.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높은 출산율을 자랑하지만 스웨덴도 해외이민과 낮은 출산율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던 과거를 지니고 있다. 스웨덴은 교육과 의료, 육아, 주거 등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주의 체제다. 국가가 건강이나 교육, 주거 등을 지원하는데 왜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가.

스웨덴 정부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고민에 쌓였다. 눈여겨 볼 대목은 이들은 '출산율' 자체에 목표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지점에서 해법을 모색했다. 출산과 육아 부분에 좀 더 집중했다. 출산휴가'를 비롯해 출산과 육아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남성들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형식적 권고사항이 아닌 출산과 육아를 권리와 의무(고용주)로 체계화했다. 출산이나 육아가 일상의 즐거움으로 자리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동수당을 비롯한 각종 지원정책과 교육, 주거 등 스웨덴의 복지시스템이 퍼즐처럼 맞물려 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다양한 제도가 뒷받침되자 출산율이 서서히 올라갔다. 이 과정에 라떼파파라는 신세대가 등장했고 이제 스웨덴에서 라떼파파는 더 이상 새로움이 아니라 일상으로,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같은 사회환경 변화에 맞물려 스웨덴은 지난해 1월 인구 1천만명을 넘어섰다. 당초 2021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여기에는 비밀이 하나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정부정책의 방향, 철학에 있다. 이들은 소위 '출산율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여성의 삶'에 주목했다. 출산이나 육아가 고통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사회적 제도와 장치를 만든 것이다. 그러자 역설적으로 출산율이 높아졌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역설적 반증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소중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해야, 부모도 아이도 살만한 사회라야, 아이들도 많이 태어나고 그럴때라야 태어날 아이들에게 덜 미안할 일이다.

육아(교육)를 비롯한 삶의 근간을 살벌한 시장에 던져두고 설상가상 출산율 운운하는 우리현실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야할 일이다. 인식을 바꾸는 일부터, 정책과 제도의 방향을 바꾸는 일부터, 근본에서.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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