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시·정·만·담(市井漫談) -아! 고구려, 안시성(安市城). 그리고 남과 북

@김영태 입력 2018.10.18. 00:00

우리 역사의 영원한 자부심이라 할 고구려(高句麗)에 대한 감정은 한민족이라면 너나없이 동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중국의 역대 왕조와 자웅을 겨뤘던 고구려인의 기개가 연면히 흘러오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당시 통할했던 영토의 넓이도 넓이지만 5천년 역사의 발원인 고조선의 정통을 이었다는 점에서도 특히 그렇다.

흔히 왕조의 터전을 닦거나 새 왕조를 연 군주에게 사후 '태조(太祖)'나 '고조(高祖)'라는 시호를 올려 존숭(尊崇)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시조, 고주몽이 아닌 6대왕에게 태조라는 시호를 올렸다. 왜일까. 이 시기에 고구려의 고토 회복(다물·多勿)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그에 따라 고조선의 성세에 버금가는 대강국이 되어서 그랬을 터다. 천년의 제국은 그러나 허무하게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왕조말 최고 권력층의 내분이 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천년의 제국이 꿈꿨을 강국(强國)을

고구려를 우리 고대사의 자부심으로 삼을만한 요인은 차고 넘친다. 그 중의 하나를 꼽자면 '안시성(安市城)'을 들 수 있다. 안시성의 성주(城主)는 양만춘으로 알려져 있다.

성주 양만춘은 본국의 군사적 지원이 끊어진 외로운 성에서 얼마안되는 성민과 군사들을 지휘해 수십만 당(唐)나라 군대를 막아낸 용장(勇將), 지장(智將), 맹장(猛將)이었다. 정사(正史)는 그에 대한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안시성 성주가 과연 양만춘인가'라는 역사적 불확실성 마저 있다. 몇 안되는 기록과 야사(野史)및 구전으로 양만춘과 그의 빛나는 전과를 전해내려 오고 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주 양만춘이 안시성 수성을 전후해 고구려의 최고 권력자, 대막리지 연개소문과의 불화(不和)의 관계에 있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연개소문의 그늘에 가려 양만춘의 장재(將材·장수로서의 자질)가 지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역사적 의심도 있다. 이웃나라의 당당하고 헌걸찬 역사를 자신들의 주변부 역사로 왜곡시켜 버린 한인(漢人)들의 거짓 사관(史觀), 우리 스스로의 위축된 사대(事大) 사서인 '삼국사기'에 의하면 연개소문도 나라를 망친 독재자로 억울한 누명을 썼다.

단재(신채호)와 백암(박은식)이 각각 '조선상고사'와 '천개소문전'에서 연개소문을 '위대한 혁명가', '독립 자주의 정신과 대외 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 일인자'로 높여 올렸던 것과는 천양지차의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시해한 뒤 그의 조카 보장왕(고구려 마지막 왕)을 허울로만 내세우고 군권(軍權)과 인사권을 장악, 당대 최고의 권력자(대막리지)가 됐다. 영류왕은 수(隋)나라를 이어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 대외 팽창정책을 일삼던 당나라에 굴욕적인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

고구려는 건국 이후 대륙의 수많은 왕조들과 당당히 패권을 겨루고 100만 대군을 앞세운 수나라의 침략을 물리쳐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할 만큼 강성한 나라였다. 동북아의 강국으로 자존감을 잃지않으려는 연개소문의 입장에서는 당과의 일전(一戰)을 위해서도 영류왕 등의 세력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을 거다. 비록 그의 사후 못난 자식들(남생, 남건)에 의해 강성했던 제국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지만 그의 생전에는 수나라를 이어 새로운 대륙 세력이 된 당나라 최고의 영주(英主), 이세민(태종)의 군대를 궤멸시킬만큼 성세를 구가하지 않았던가.

이세민의 군대가 고구려 침략에 나섰다가 처절한 패배를 경험한데는 양만춘이 지키던 안시성을 넘지 못한 원인도 빠뜨릴 수 없다는 점에서 양만춘은 연개소문과 함께 大고구려의 마지막을 장식한 장엄한 불꽃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 사극이나 드라마에 주요 소재로 채택됐던 고구려의 상징, 안시성이 얼마전 개봉해 만만치 않은 흥행기록을 세웠다.

남과 북이 다시 하나돼 이뤄나가야

이 시점에 새삼 고구려와 안시성을 떠 올린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남과 북의 냉전(冷戰) 분위기를 허물고 한반도 평화와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하나됨을 향해 달려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한반도 평화는 남북이 마음을 합친다고 해서 쉬 이뤄질 사안은 아니다.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전제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 중국 및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이해 등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문제 풀이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남과 북은 평화와 공동번영, 하나됨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해 평양 능라도 종합체육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들에게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서 살았다"고 했다. 아마도 그 연설에는 5천년을 함께 산 한민족이 이제 지난 70년의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는 간절한 염원을 담았으리라. 그리고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우리 땅을 통해 민족의 영산, 백두산 상상봉에 올라 천지의 물을 만났다.

오래전 중국의 광대한 대륙을 통할했던 고조선의 고토회복에 나섰던 고구려. 제호(帝號·광개토 대제·廣開土 大帝)를 칭하고, 독자적 년호(영락·永樂)를 내세웠으며, 나라의 기록을 세가(世家)가 아닌 본기(本紀)로 남겼던 大고구려의 꿈을 향해 남과 북이 하나로 나아감이 결코 꿈일 수 만은 없다.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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