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행의 세상읽기

인문지행의 세상읽기- 세상에서 가장 길고 슬픈 편지

입력 2018.06.08. 00:00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풀어야 할 모든 갈등의 원형
카프카 작품의 배경인 프라하 성

단 하루도 누군가하고 크고 작은 갈등 없이 지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상이 곧 갈등과 해결의 연속이다.

심각한 갈등 중에 하나인 세대 갈등과 비슷한 현상이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이다. 부자 갈등은 아마도

인류 역사 상 가장 오래된 갈등일 것이다.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크로노스 신화다.

크로노스는 권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족족 잡아먹는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은 가정의 상호관계와

이로 인한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과 이에 따르는 고통과 상처를

가장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쓴 작가가

체코 출신의 프란츠 카프카(1883-1921)다.

#그림1중앙#

◆아버지의 권리와 아들의 선택

카프카가 쓴 자서전적인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1919)라는 이 유명한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길고 슬픈 편지'라는 별명과 함께 '아버지의 소송'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 만큼 카프카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상처와 고통 뿐만이 아니라 강한 비판과 성토가 담긴 글이다. 물론 이 작품이 실제로 아버지에게 전달된 것은 아니다. 이런 편지를 쓴 직접적인 계기는 자신의 약혼녀에 대한 심한 반대 때문이었다. 카프카는 휴가 때 작은 옷가게를 하는 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의 성격은 내성적이고, 겸손하고 대단히 감상적이어서 카프카는 몹시 마음에 들었고 결혼까지 결심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반대가 너무나 거셌다. 반대가 얼마나 심했던지 카프카는 분노와 치욕감으로 몸서리를 치면서 편지 형식의 이 글을 썼다.

아버지 눈에는 아들이 보잘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싸구려 여자에게 홀려서 정신이 나간 것으로만 보였다. 이런 아들이 한 없이 못 마땅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퍼붓는다. "그 여자 말이다. 아마 블라우스 하나는 잘 골라 입었던 모양이지. 마음에 드는 여자만 나타나면 서둘러 결혼이나 하려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구나." 카프카의 아버지가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아들이 만나는 여자의 집안이 구두 수선공으로 생계를 겨우 이어가는 최하위 계층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카프카의 아버지는 아들이 감히 미천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는 것 이유가 아버지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며 분노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여자가 '쉬워 보이는' 블라우스나 입고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가 아니라 그럴 듯한 기업가의 딸이어야 했다. 결국 카프카는 파혼을 했다. 이때 입은 내면의 상처로 카프카는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썼다. 카프카의 나이가 이미 서른여섯이었다.

상처가 얼마나 깊게 오래 동안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런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신분과 집안, 직업과 재산 정도를 결혼의 절대 조건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을 보면 카프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버지(어머니)는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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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삶과 욕망

카프카의 아버지는 왜 이렇게까지 아들의 삶을 억압했을까? 그는 프라하 남부의 작은 동네에서 푸줏간을 하던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극도로 궁핍해서 겨울에도 맨발로 고기 배달을 다녀야 할 정도였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혼자 열네 살에 집을 떠나 뜨내기 잡화행상으로 고생을 하다가 성공을 거두고 프라하로 이사했다. 결혼 후에는 장신구 가게를 차려서 차츰 사업가로서 자리를 잡았다. 사업가로 성공은 했지만 사실 많은 것을 갖지 못한 헤르만 카프카에게 아들의 성공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사업의 성공만으로는 불가능한 신분상승을 위해서 아들에게 법학을 공부하라고 강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이사를 여러 번 해가면서 카프카를 독일어 학교에 보냈다. 당시 프라하 상류층의 언어가 독일어였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이름마저 독일 황제의 이름인 '프란츠'를 따라서 지었다. 그렇기에 카프카가 사업가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고 글 나부랭이나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세상에서 아무 데도 '쓸 모 없는 일'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런 아버지에 대해 카프카는 평생 죄의식과 증오심, 고통과 사랑, 두려움과 존경심을 동시에 가졌다.

카프카는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앞에 서기만 하면 자신감을 잃었고 그 대신 한없는 죄의식만 갖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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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카프카의 감정은

사랑과 원망, 존경과 소외감의 뒤섞임

◆아버지의 법과 아들의 죄의식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만물의 척도였고,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법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 그 자체다. 하지만 삶의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법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카프카는 자신의 삶을 아버지가 마음대로 한다고 항변한다. 아버지의 거친 독단과 이기심은 카프카에게 삶에 대한 믿음 대신 죄의식과 복종을 강요했다. 아버지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거인과 폭군의 모습으로 어린 카프카를 고분고분하게 만들었지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열등감과 쓸모없는 자식이라는 죄의식을 안겼다. '말대답 하지 마"하고 소리 지르는 아버지는 카프카를 순종적인 아이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말을 잃어버린 아이로 만들었다. 결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카프카는 세 번 약혼했지만 결혼은 끝내 하지 않았다.

거칠고 궁핍한 환경에서 살아남았기에 더 강한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평생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고 동시에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의 법과 든든한 울타리였다. 우리 사회의 자수성가한 아버지들과 너무나 비슷하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카프카의 감정은 사랑과 원망, 존경과 소외감의 뒤섞임이다.

그럼에도 카프카의 편지가 분명하고 보여주는 것은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상처와 고통은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카프카가 글로써 제기한 '소송'은 아버지와 자신의 차이를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고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 권리의 요구였다. 이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강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임무이자 덕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우리가 풀어야 할 모든 갈등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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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옥숙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로 박사를 마쳤다. 이 논문은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대학강의와 함께 통합적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는 시민의식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형식의 시민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동명동에 자리한 동네책방 '심가네박씨'를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Der Tanz bei H.Heine' '괴테의 생각을 읽자' '다시 읽는 서양철학사'(공저) '철학 개념 용례 사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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