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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side 칼럼-나희덕의 예술이야기-잃어버린, 또는 아직 오지 않은 시
입력 : 2018년 05월 01일(화) 00:00


'시'에 관한 몇 편의 영화들이 있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그의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마리오의 우정을 다룬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일 포스티노>, 중학교 손자를 혼자 키우며 시를 배우러 다니는 양미자 씨가 등장하는 이창동 감독의 <시>, 그리고 패터슨 시(市)에 사는 패터슨이라는 버스 운전사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를 쓰는 과정을 그린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 등이 떠오른다. 비평가 신형철은 「인간의 형식」이라는 글에서 <일 포스티노>는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시>는 '시'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패터슨>은 '시작(詩作)'에 관한 영화라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 <패터슨>은 무명 시인 패터슨이 시를 쓰는 행위와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한다. 패터슨은 매일 새벽 6시 10분 무렵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아내 로라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마빈과 동네를 산책하고, 바에서 맥주 한 잔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반복적 일상의 틈을 비집고 이어지는 시쓰기는 그의 삶을 평범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행위다. 말수가 적고 주로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인 그가 내면을 드러내는 순간 역시 시쓰기를 통해서다. 영화에는 패터슨이 쓴 시가 일곱 편 등장하는데, 이 7이라는 숫자는 공교롭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일상을 병렬적으로 다룬 서사구조와 일치한다.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보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매일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고, 침대 위에 누운 두 사람의 자세도 조금씩 다르다. 출퇴근하며 눈여겨보는 사물이나 풍경도 조금씩 다르고, 정해진 구간을 도는 23번 버스에 탄 승객들도 조금씩 다르다. 이란 여성인 아내가 매일 그려내는 이국적 패턴도, 동네 바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조금씩 다르다. 무엇보다도 패터슨의 내면과 비밀노트 속에 펼쳐지는 시의 발걸음이 조금씩 다르다. 일상 속에서 시는 완성을 향해 한 줄 한 줄 나아간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야말로 짐 자무쉬가 영화를 통해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들에 있다"는 그의 말처럼.

영화에 나오는 시들 중에서 「다른 하나(Another One)」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릴 때 너는 / 배운다 / 사물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 / 높이, 넓이, 그리고 깊이. / 신발상자처럼. / 그리고 나중에 너는 듣게 된다 / 네 번째 차원이 있다는 걸 : 시간." 미국 시인 론 패짓(Ron Padgett)이 썼다는 이 시에서 삶은 높이, 넓이, 깊이, 그리고 시간의 차원을 지닌 신발상자에 비유된다. 앞의 세 가지 차원이 공간적인 것이라면, 시간은 그 공간성을 변화시키는 네 번째 차원이다. 우리는 한 켤레 신발처럼 일상 속에 갇혀 살지만, 시간은 매순간 미묘하게 다른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마치 패터슨의 아내에게 토요일이 컵케?이 완판되는 날인 것처럼, 패터슨에게 일요일이 소중한 시작노트가 애완견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는 날인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계속된다. 패터슨이라는 도시의 현실과 그 부부가 꿈꾸는 이상 사이에서, 성공한 예술가와 좌절한 아마추어 사이에서, 사랑과 실연 사이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아이와 노인 사이에서, 노동과 시쓰기 사이에서, 잃어버린 시와 아직 오지 않은 시 사이에서…… 이 모든 것들은 시간 속에 배태된 이란성 쌍둥이 같은 것처럼 여겨진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쌍둥이 모티프를 감독이 숨겨둔 중요한 은유로 읽는다면, <패터슨>은 '시'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시간'에 대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시작노트를 잃고 폭포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패터슨에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암스의 고장 패터슨을 찾아온 일본인 시인은 말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그 말을 곱씹으며 패터슨이 터뜨린 감탄사는 '아하!'였다. 약간 진부한 결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순 없지만, 이 감탄사 덕분에 패터슨은 다시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들을, 또는 아직 오지 않은 시들을 다시 적어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시인.조선대 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