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지구라는 행성의 세입자로서의 의무

@선정태 입력 2018.04.30. 00:00

맹수진 프로그래머(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일을 시작한지 3년째, 그러니까 올해 5월로 세 번째 에디션을 치르게 된다. 남들보다 딱히 환경 감수성이 높다 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연간 수백편의 환경영화를 보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나름 각성하게 되었고, 이대로 가면 지구는 머지않아 종말을 맞게 된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수백년간 인류는 근대화, 산업화라는 명목 하에 지구를 극심하게 착취해왔다. 길게 잡아도 2백여년에 불과한 인류세(acthropocene) 기간에, 인간은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한 38억년 동안 가해진 파괴의 총량을 뛰어넘는 대대적인 훼손을 저질렀다. 근대 문명이란 결국 지구 깊숙이 구멍을 뚫어 뽑아낸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얻은 에너지로 일궈낸 것이다. 그 결과 발생한 치명적인 후유증들은 '기후변화' 문제로 집약되어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대대적인 복수를 가하고 있다. 뒤늦게 인간은 이러한 파괴적인 개발이 인간 자신의 종말을 재촉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2015년 발효된 '파리 기후협약'은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전세계인들이 모처럼 머리를 맞대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 온도 1~2도를 낮추기 위해 전세계가 치열한 노력하는 와중에도 우리에게는 이 문제가 그렇게 절박하게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다. 지정학적 위치상 섬처럼 고립된 국가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전세계의 연대 책임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한 지구 온난화 문제보다는 지금 여기의 갈등 현안이 더 시급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세 번의 환경영화제를 치르면서 우리의 환경 감수성이 지나치게 낮다는 아쉬움 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올해 들어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어느 때보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실감하는 분위기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를 뒤덮는 미세먼지로 인해 나의 건강이 치명적인 위협을 받게되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 봄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고. 하나 더 들자면 얼마 전에 발효된 중국의 쓰레기 수입 금지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쓰레기 대란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미세먼지의 주범이 중국이라며 중국 정부를 원망해 왔다. 최근의 많은 연구들이 국내 미세먼지는 중국보다 오히려 국내 요인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를 속속 발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를 중국 탓으로 돌려왔다. 그런데 정작 중국 정부가 미세먼지, 대기오염의 주범인 쓰레기를 더 이상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니까 정작 내 집 앞마당에 쌓인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당황해 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쓰레기와 관련한 별다른 규제 장치가 없는 한국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쓰레기 하치장을 잃어버린 유럽 각국의 수출 대체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작년 서울환경영화제 대상 수상작은 자우 리앙 감독의 '플라스틱 차이나'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입된 어마어마한 쓰레기 산을 생계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중국인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이 영화는 중국 내에서 거대한 논쟁을 일으켰고 결국 '쓰레기 수입 금지'라는 중국 정부의 정책을 이끌어냈다. 올해 중국발 쓰레기 대란이 발생하면서 '플라스틱 차이나'가 여러 매체에 보도되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앵콜 상영을 요청했고, 올해 서울환경영화제는 영화의 특별 상영을 결정했다. 이와 함께 해양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플라스틱 바다',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비포 더 플러드', 10년만에 다시 한번 기후변화에 관한 사자후를 내뿜는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2' 등도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다. 환경 문제는 기업과 정부, 그리고 시민의 자발적인 노력 삼박자가 합을 맞출 때 해결 가능한 복잡한 문제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고유하고 분리된 것으로 경험하지만,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멀리서 지구를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가 지구라는 터전을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라는 것을 똑똑히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 지구를 공유하는 행성의 세입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금 나는 기꺼이 서울환경영화제의 '삐끼'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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