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영화관 살리기 지역의 힘으로

'지역 영화관 살리기, 지역의 힘으로' <4>광주극장은 살아 숨쉬는 문화공간

입력 2017.07.26. 00:00 이윤주 기자
추억의 보물상자 같은 시네마 천국

영화표·옛 영사기·손때 묻은 난간까지

극장 구석구석 소소한 볼거리로 '가득'

일제강점기 임검석은 시대상 담긴 유물

샛문 옆 '영화의집' 문화사랑방으로

기획전·다양한 협업으로 존재감 살려

광주극장이 80여년을 넘도록 살아 숨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끊임없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 때문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영화가 있지만 이제는 시민들을 한데 묶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커졌다. 광주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만남을 이어가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함께 공유하는 것은 기본, 건축을 이야기하고, 콘서트와 전시를 즐기고, 인문학을 나누는 모임들이 꾸준히 광주극장에서 이뤄지고 있다.광주극장이 있는 이곳, 광주 사람들의 정서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세월의 흔적 쌓인 추억의 공간들

광주극장은 매표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재미나다.

이제는 보기 힘든 영화표가 발권기를 거쳐 작은 창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빳빳한 티켓의 느낌이 멀티플렉스의 영수증 용지와는 사뭇 다르다.

극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묘미도 쏠쏠하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복층 구조의 단관극장이 지닌 이채로움이 극장 곳곳으로 발길을 이끈다. 출입구에 드리운 두툼한 커튼을 거쳐 상영관으로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스크린에 고개가 저절로 젖혀진다.

그동안 수도없이 오갔을 사람들의 발길에 맨들맨들해진 초록색 바닥, 오랜 세월의 손때가 베인 난간들이 정겹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968년까지 광주극장에서 사용됐던 영사기와 옛 한국영화 입간판들이 나란히 놓여 자연스럽게 포토존으로 활용된다.

이곳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면 벽면 가득히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일제강점기 광주극장의 초기 모습부터 당시 극장을 찾았던 배우들과 감독들 그리고 광주극장에 몸담았던 가족들의 모습까지 광주극장의 역사가 담긴 흑백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림1중앙#

◆암울했던 시대상도 고스란히 남아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극장 외부에 남아있는 옛 매표소 창구와 극장 1층 중앙에 자리한 임검석(臨檢席)은 옛 시대상이 담겨져 있다.

특히 임검석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광주극장에만 남아있는 유물이다. 1층 관람석 중앙 맨 뒷쪽에 분리대를 사이에 두고 여섯 좌석으로 이뤄져 있다.

극장 1층 일반 출입구와 별도로 문이 마련된 임검석은 일제강점기 극장에 오르는 공연이나 영화에 대한 검열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조선총독부에서 파견된 순사들이 임검석에 앉아 공연이나 영화를 지켜보다 호루라기를 불며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특히 횟수가 세번에 달하면 공연이나 영화가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임검석은 해방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또다른 용도로 활용됐다. 바로 1980~90년대 학생들을 단속 나온 교사들이 선도를 목적으로 이용했다. 간혹 나이를 속이고 몰래 성인물을 관람하던 학생들이 여지없이 이곳 임검석에서 지켜보던 교사들에게 불려나가곤 했다고 하니 학창시절 추억을 간직한 이들도 있을 듯 하다.

#그림2중앙#

◆시민들의 위한 문화공간 '영화의집'

광주극장 뒷편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영화의 집'이다.

1968년 극장 소유주 사택으로 지어진 이곳은 광주극장을 방문한 영화인들을 맞이하거나 극장 직원들이 식사를 하던 공간이었다. 한때 귀금속 세공업자들의 작업실로 세를 내주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빈집으로 방치돼 있다 광주극장 개관 80주년이던 지난 2015년 새롭게 문을 열었다. 담장 한켠에는 극장과 오갈 수 있는 작은 통로가 있다.

이곳 내부도 광주극장과 많이 닮아있다. 1층 일부만 작은 세미나실로 개조됐을뿐 건축 당시의 모습이 대부분이 유지되고 있는 것.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광주극장의 옛 자료들이 이곳에도 전시돼 있다.

이곳이 광주극장과 새로운 문화공간이 됐다.

영화로 광주극장과 인연을 맺어온 이들은 물론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곳을 통해 광주극장과 또다른 만남을 이어가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화요스터디, 씨네클럽 등 영화동호회의 정기적인 모임은 물론 건축 관련 소모임 그리고 인문학시민공동체인 '인문지행'이 매월 한차례씩 문화예술기획강좌를 열고 박물관 또는 미술관 기행을 이어가고 있다.

또 누구든 사용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대여도 가능하다.

◆알토란 같은 프로그램들

광주극장은 늘 기획전이 이어진다. 수년째 이어오는 고정프로그램들은 물론 색다른 테마의 영화제도 빠지지 않는다.

가장 인기있는 행사는 '감독과의 대화'다. 출연진이나 감독이 잠깐 인사를 나누고 떠나는 무대인사와는 다르다.

영화를 감상한 후 관객들과 작품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는 자리로 매년 30여차례 마련된다.

최근에는 '옥자' 봉준호 감독이 광주극장을 찾아 행사를 갖기도 했다.

또 매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칼 등 제3세계 영화제는 물론 에릭 로메르, 짐 자무시 등 세계적인 감독들의 작품전, 배우열전, 감독데뷔작전 등 다채로운 기획전을 통해 지역에 다양성 영화를 선사하고 있다.

지역 명사들이 추천하는 영화를 함께 감상한 후 대화를 나누는 '시네마 가이드맵'도 눈길을 끈다.

올해는 지난 4월 유재홍 전남대 교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시작으로 오는 10월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45년 후'까지 매월 한 차례씩 이어지고 있다.

10월에는 광주극장 개관기념영화제를 열리며, 연말에는 광주극장을 자주 찾는 단골 관객들과 이벤트도 갖는다.

꼭 영화만이 아닌 문화예술행사도 함께 한다.

광주프랑스문화원과 매년 함께하고 있는 콘서트'음악으로 통한다'와 여러 신진작가들의 전시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와의 협업 등도 광주극장이 지닌 존재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오는 8~9월에는 유일하게 손간판이 남아있는 광주극장만의 특색을 살려 시민들과 함께 미술실에서 워크숍도 하고 간판그림도 공동작업해보는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김형수 광주극장 이사는 "극장은 그 도시의 정서가 켜켜이 쌓여있는 공간"이라며 "늘 새롭고 다양한 기획전을 마련하려 노려가고 있지만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향수가 배어있다고 무조건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이사는 "젊은 관객층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포맷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시설들이 절실하다"며 "진짜 극장에서 최신작들을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장비까지 갖춰진다면 더할나위 없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주기자 storyoard@hanmail.net

서충섭기자 zorba85@naver.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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