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의 MICE 이야기

■김기태의 MICE 이야기-제1장 사람을 모아야 산다 (2) 유희의 동물, ‘호모루덴스’

입력 2017.01.03. 00:00
대통령이 참석한 컨벤션 …‘지난 2006년 11월 7일 제3회 지역혁신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故 노무현 前대통령의 축사를 듣고 있다. 컨벤션은 계모임, 학술회의부터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적인 행사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잘 키운 전시' 하나가 도시 살리고, 나라 살리는 시대

인간의 놀이의 본성이 정형화된 것이 ‘MICE’

덩치 큰 국제회의 하나로 도시의 흥망 달라져

MICE 통해 사람 모으면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

인간은 무리를 지어 모이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 동물이다. 사람들은 본능처럼 모이고, 모여서 놀기를 좋아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1년을 건강하게 자라면 주변 일가친척들이 몰려들어 그 아이의 무탈한 성장을 ‘돌’이라는 이름으로 정성껏 축하해 준다. 그 아이가 교육을 받고 성장하면 사람들은 또다시 몰려 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축하하고, 나이가 들어 죽게 됐을 때도 ‘장례식’이라는 이름으로 몰려들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한다.

이처럼 사람은 무수히 많은 만남과 모임을 반복하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국가들도 ‘끼리끼리’ 무엇인가 ‘모임’ 이나 ‘미팅’을 만들어 모이기를 좋아한다. 그 반대가 ‘왕따’인 것처럼 사람은 본능적으로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임에 분명하다. 어쩌면 인간은 서로 몰려다니다 한 평생을 마치는 존재와도 같아 보인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질 않고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찾고, 그 재미를 체계화한 것을 ‘이벤트(event)’라고 부른다.

인간의 이 같은 특징을 싸잡아 네덜란드의 호이징가라는 역사학자는 ‘호모 루덴스’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놀이하는 인간' 또는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지구상의 어떤 생물체와도 달리 인간만이 제도와 학습을 바탕으로 놀이를 즐긴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인간의 놀이 본성은 자연스럽게 정형화되고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 지혜를 모으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체의 행위를 우리는 ‘함께 모여 뜻을 모은다’는 ‘회의(會議)’라고 부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회의는 지극히 개인적인 모임인 동호회나 계모임에서부터 워크샵, 세미나, 컨퍼런스, 포럼, 컨벤션, 콩그레스까지 구별조차 쉽지 않은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진화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편안함을 쫒는 인간의 본성에 최대한 가까이 하려는 노력은 회의를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회의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식사와 음료 서비스(catering)를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축하 공연 등과 같은 다양한 여흥(entertainments) 까지 곁들이는 등 회의는 갈수록 더욱 종합적이고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다.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의 수준이나 레벨이 높아질수록 회의는 양과 질에 있어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달랑 회의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협상과 교류를 통해 물건과 기술이 거래되는 또 다른 형태의 마켓으로 변하는 것이다. 지난 2010년 가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와 같은 국가 원수급이 참석하는 회의는 지구상에서 개최될 수 있는 가장 큰 회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의는 가장 높은 꼭대기를 뜻하는 ‘서밋(summit)’으로 불린다. 거물급 글로벌 경제인들이 대거 각국의 대통령들과 함께 나란히 서울을 찾았다. 당시 서울은 수많은 비즈니스와 교류·협력을 논한 메가톤급 거래가 일어나는 국제적인 시장이 됐던 것이다. 이런 종합적인 회의의 모습을 사람들은 ‘컨벤션(convention)’이라고 이름 지었다.

사람은 또 본능처럼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한다. 그것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말할 수 있다. 원하는 물건을 갖고 싶은 욕구는 인간 세상에 장터를 생겨나게 만들었다. 장터에는 수많은 물건과 함께 사람들이 모여든다. 장터란 그동안 내가 듣고 보지 못했던 정보가 있고, 새로운 흐름이 있는 곳이다. 새로운 정보를 얻고, 물건은 갖고 싶어 하는 견물생심의 본성은 장터 탄생의 모티브가 됐다.

800여 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청 앞 광장에서는 정기적으로 장(場)이 섰다.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는 자연스럽게 질서를 잡아갔다. 그 질서는 ‘전시회, 박람회’라는 이름으로 체계화됐다.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은 장터로 싸들고 나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그 물건이 팔리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물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행위는 ‘전시회(展示會·exhibition)' 또는 ‘박람회(博覽會·exposition)’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회의, 전시회, 박람회 모두 ‘사람이 모이고, 뭔가를 보여 준다’는 뜻이 들어있다. 회의와 전시가 함께 가는 이유다. 이 흐름을 ‘전시·컨벤션’으로 부르고 있다. 독일에서는 그것을 ‘메세(Messe ·전시회)’라 불렀다.

이렇게 시작된 독일의 전시산업(메세)은 자동차, 제약, 화학, 철강, 에너지, 금융 산업과 더불어 최고 경쟁력을 갖춘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되고 있다. 오늘날 독일은 전시회로 먹고사는 나라가 됐다. 실제로 독일은 총 수출의 60% 정도를 전시회를 통해 처리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전시산업 선진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시회는 상품의 거래 및 기술과 정보를 교환하는 플랫폼이라는 본래 기능에다 참가자들이 떨어뜨리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관광수익까지 합쳐 엄청난 파급효과 때문에‘굴뚝 없는 산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시산업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은 가히‘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컨벤션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가끔 인용하는 비교 대상이 있다. 예를 들어 3천300명이 참석한 국제회의의 경우 참가자들이 5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쓴 돈이 520만 달러 정도로 추산한다. 이것은 TV 1만1천대, 1천500cc 아반떼를 730대 수출한 것과 맞먹는 액수라고 풀어 설명한다. 쇠를 깎고 쇳물을 붓는 제조 공장 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것만으로 5일 동안 이처럼 돈을 벌 수 있다는 전시·컨벤션의 매력이다.

사람이 모이면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지 실례를 보도록 하자.#그림1오른쪽#

생명공학부터 여행업까지 거느린 중국의 텐사그룹(天獅集團)은 지난 2015년 5월,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6천여 명의 직원이 일제히 프랑스 니스로 단체관광을 떠났다. 이 회사 직원들을 태우고 다니는 버스만 146대, 이들이 묵은 숙소는 4성급, 5성급 호텔 79곳에 객실은 한꺼번에 7천900개를 썼다. 이들 여행객들이 4일 일정의 여행기간 동안 니스 시에 245억 원 정도의 수입을 안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4월, 화장품과 건강보조식품 유통회사인 중국의 아오란 그룹 직원 6천명이 한꺼번에 인천을 찾았다. 직원들의 성과를 격려하고, 기업회의를 열기 위해 인천을 찾은 이들을 위해 인천시는 3천마리의 치킨과 4천500개의 맥주를 준비해 월미도 문화거리에다 8인용 테이블 550개를 850m 길이로 치맥파티를 열어줬다. 이들 중국 단체관광객 덕분에 인천시는 120억 원의 경제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의 경우 21개 나라 정상들이 모두 1만 명을 부산으로 거느리고 와 1주일 정도 머물렀다. 부산 체류 기간 동안 이들 참가자들이 부산에 직접 뿌린 돈은 2천400억 원, 회의 개최로 인한 직·간접 생산유발효과는 28조에 달했다.

광주는 어떤가? 최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1천여 명이 참가한 국제척추통증학회라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학회가 열리는 동안 4끼의 식사가 제공된 케이터링(Catering·식음료서비스) 비용으로만 1억 원 가까이 지출됐다고 한다. 여기다 이 학회 참가자들이 3박4일 동안 광주와 광주 인근에 체류하면서 술도 한잔 했을 것이고, 택시나 버스를 타고, 기념품을 사고, 골프도 즐겼을 것이다. 회의에 필요한 각종 현수막, 인쇄물, 전시 관련 장치공사, 필요 소모품까지 따져보면 회의 하나 개최됨으로써 얻는 부가가치는 가히 상당하다 할 것이다.

전시·컨벤션은 어쩌면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우리가 단단히 붙들어야할 분야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 전시·컨벤션산업이 들어온 것은 불과 30년 안팎. 우리나라 전시·컨벤션산업의 시초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다. 지난 1979년 문을 열었지만 1988년 올림픽과 함께 본격화 됐으므로 우리의 전시·컨벤션산업의 총 이력은 기껏해야 28년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이후 대구(EXCO), 부산(BEXCO), 제주(ICC제주), 일산(KINTEX),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 창원(CECO), 대전(DCC), 인천(송도컨벤시아) 등 지방 컨벤션센터들일 속속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 경주화백컨벤센터가 개관하고 수원컨벤션센터가 착공한데 이어 울산, 전주 등도 컨벤션센터 설립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전시·컨벤션센터 설립 붐이 일고 있다. 마치 지난 1970 ~1980년대 시장·군수님들이 앞 다퉈 자기 지역에 공설운동장을 하나쯤 지어야 행세했듯 요즘에는 도시마다 전시·컨벤션센터 설립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형국이다. 30년 안팎의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도 이제 ‘전시·컨벤션 시대’에서‘MICE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수출증진 및 판로확대에 초점을 맞춘 전문전시(trade show)와 볼거리 위주의 대중적인 일반전시(public show)로 대표되는 전시와 크고 작은 국내외 회의를 총칭하는 컨벤션이 맞물려 ‘전시·컨벤션’이라는 산업의 장르는 이제 ‘인센티브’를 더해 MICE 산업으로 확장,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도박과 환락의 도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도시 전체 수입원 중 ‘전시·컨벤션’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도시 전체 수입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환락의 장소로 사용해오던 풍성한 호텔들을 회의와 전시의 공간으로 활용, 글로벌 비즈니스와 컨벤션의 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하고 있다.

아시아 회의도시의 대명사 싱가포르는 전체 관광수지의 35%를 컨벤션 수입으로 채운다는 야심찬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아시아의 ‘전시·컨벤션’의 중심국으로 부상한다는 전략을 마련, ‘전시·컨벤션’을 국가 경영의 중점 육성산업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세계 각국은 그야말로‘전시·컨벤션’이라는 맛있는 먹이 감을 누가 먼저, 누가 더 많이 낚아챌 것인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걸음마를 뗀 수준의 우리나라 ‘MICE산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의 땅에, 더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불려 들여 물건을 사고파는 전시회를 열고, 비즈니스와 놀이가 연계된 회의를 개최하게 한 뒤 즐거운 여흥과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 돈을 쓰게 해야 한다. 이제 '잘 키운 전시' 하나가 도시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시대가 됐다. 덩치 큰 국제회의 하나만 잘 유치해도 한 나라와 한 도시의 흥망이 달라질 수 있는 시대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다. / 김대중컨벤션센터 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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