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는 경기고등학교 3학년때 한일협정 반대시위에 참여했다.
1965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 선배인 김지하 김정남 등과 함께 문리대 학생운동의 핵심이 된다.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 규탄데모에 나섰다 무기 정학을 받곤 강원도 함백탄광으로 가 광부들과 생활했다.
복학한 그는 조영래, 김근태와 삼총사로 불리며 교내 학생운동을 주도한다.
졸업과 군 제대 후엔 소설가 황석영과 노동운동에 의기투합한다.
두 사람은 1973년 구로공단의 한 전자산업 회사에 위장 취업, 일당 30원짜리 '시다' 노릇을 했다. 둘은 가리봉동 '벌집'(작은 쪽방)에서 살았다.
황석영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문제는 손학규의 학력이었다. (면접에서) 돌아오는 길에 학규가 푸념을 했다. '에이 똥통학교 나와 가지고 취직도 안 되네!.' 학벌이 안 좋아 취직이 안 됐다는 얘기는 그 후 친구들 사이에 농담거리로 자주 오르내렸다. 그래서 '경기 야간'이라는 말이 생겼다."
황석영은 경복고 중퇴 후 다녔던 공고 야간졸업장을 들이밀어 금세 취직이 됐으나 손학규는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중졸인 체 해도 인사담당자들은 "경기중 나왔으면 경기고, 서울대 갔을 것 아니냐. 여기 왜 취직하려고 하느냐"고 의심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후 기독교 빈민운동을 벌이던 손학규는 10.26 직후 보안대에서 풀려났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장학금으로 영국유학을 떠난다.
# 유신독재 시절, 국가가 내려준 공식 호칭이던 '산업역군'은 일반적으로 '공순이'로 불렸다.
'공순이', '공돌이'는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존재들이나 사회적 차별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영화 '구로아리랑'의 여주인공은 "거리에 나서면 손톱에 기름때라도 끼었을까, 머리에 실밥이라도 묻었을까 늘 조마조마했고 사람들이 자꾸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당시 우리는 거의 모두 가난했고 무지했으며, 그래서 가난과 무지에 대한 환멸과 절망을 사회적 약자의 상징이었던 공돌이·공순이에게 풀어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때 '경기 야간' 손학규는 제발로 걸어가 '공돌이'가 됐다.
그가 내건 '저녁이 있는 삶'도 이같은 그의 이력에서 체화돼 나온, '도저'(到底)하고 묵직한 정치적 비전이다.
블루·화이트칼러를 망라한 임금노동자 전체, 그들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미래'에 대한 숙고의 '고갱이'인 것이다.
최근 10년간, 이렇게 쉽고 핵심을 찌르는 선거 메시지도 별로 없었다.
정가 일각에선 "때가 어느땐데, 고즈넉한 구호냐"고 힐난했으나 서구 근로계급의 노동운동과 정치참여 역사, 그 이념적 지평을 간과한 지적이었다.
# 손학규는 2007년 3월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 민주당으로 호적을 옮긴다.
그리곤 7년4개월 만에 정계를 은퇴했다.
1993년 김영삼의 영입으로 민자당에 입당한 그의 이력은 '민주개혁세력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제1야당 안팎의 끈질긴 정통성 시비를 불렀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그를 '불쏘시개'로 썼다. 그것도 가장 추울 때만 두 번 당 대표를 맡겼고, 가장 어려운 곳만 골라 두번이나 보궐선거에 내보냈다.
손학규는 옥스퍼드 유학 당시 발발한 광주항쟁을 항상 죄스러워 했다.
이역만리에서 '치를 떨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주'에 유독 미안해 했고, 그만큼 '광주사람들'에게 더욱 진심으로 대했다.
수도권 출신에 중도이미지를 가진 그의 공백은 제1야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정치복귀도 그의 스타일로 보아 지지자들의 먹먹한 바람으로 그칠 것이다.
혹 '역사'가 그를 다시 불러 낼 순 없을까.
야권의 혼돈과 지리멸렬이 계속되는 지금, 그의 부재가 더 아쉽고 허전하다.
/서울취재본부장
- 때아닌 가을에 폭염주의보? 역대 가장 더운 9월 중순 무등일보 DB. 최근 광주·전남지역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9월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는 등 11년 만에 가을폭염이 관측됐다.18일 광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기상청은 지난 16일 광주와 담양에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다. 이튿날인 17일에는 폭염주의보가 나주와 화순까지 확대됐다.폭염주의보 첫날인 16일 광주 낮 최고기온은 31.3도로 평년 기온(26.9도)보다 4.4도 높았다.이튿날인 17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33.5까지 높아져 평년 기온(27도)과 6.5도 차이가 났다.특히 18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34.5도까지 치솟아 9월 중순 최고기온을 갱신했다. 이전까지 9월 중순의 최고기온 기록이던 33.7도(1998년 9월 19일·2008년 9월 18일·2008년 9월 19일)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광주지역에서 9월 중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관측 이래 네 번째다. 지난 1998년에 처음으로 '한가을 폭염'이 나타난 데 이어 2008년과 2011년에도 9월 중순까지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기상청은 한반도 주위의 고기압에 의해 따뜻한 기류가 유입되며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 아래쪽에는 여름 기단인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직까지 물러나지 않고 태평양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우리나라로 불어놓고 있다. 동해상에는 또 다른 고기압이 자리를 잡고 한반도 서쪽 지방에 더운 공기를 유입시킨다.여기에 18일에는 햇살을 막아주던 구름까지 걷히면서 폭염지수를 더욱 높였다.기상청 관계자는 "고기압이 따뜻한 공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남해상에서 태풍 '난마돌'이 북상하면서 뜨거운 수증기를 몰고왔다"며 "태풍이 지난 후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며 본격적인 가을 날씨가 이어질 예정이다"고 말했다.한편 폭염주의보는 폭염특보의 한 종류로 이틀 이상 하루 최고 체감온도가 33도를 웃도는 등 더위로 인한 큰 피해가 예상될 때 발효된다. 이전까지는 기온을 기준으로 폭염특보를 발령했으나 지난 2020년부터는 기온과 습도를 함께 고려하는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 · 전남 공공배달앱 먹깨비, 농협카드과 손잡고 경품 이벤트
- · '당신도, 광주에서는 e스포츠 선수'
- · 시암송
- · 현대차 美 전기차공장, 조지아로···6.3조원 투입 '年30만대'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