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기쁨보다는 작가로서 부담과 책임이 앞섭니다. 앞으로도 5·18 역사적 자리매김을 위한 작품 창작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최근 5·18 기념재단이 주관한 올해 ' 5·18 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확정된 소설가 공선옥씨는 소감을 이같이 피력했다.
수상 작품은 '은주의 영화'다.
본상 심사위원회는 "5·18문학상에 딱 맞는 작품으로 그 환난을 견뎌 낸 변두리 삶에 대한 '아무렇지 않은 묘사'는 공선옥 소설가의 개성과 품성이 빛을 내는 대목"이라며 "사건과 인물을 통해 주제를 구체화하는 능청맞은 경지도 이제 공선옥이 '자기세계'를 굳혔다는 반가움과 믿음을 갖게 해줬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은주의 영화;는 아픔을 가로지르는 생생한 입담으로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을 보듬어온 작가 공선옥이 '명랑한 밤길'이후 12년 만에 신작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중편소설 '은주의 영화'를 비롯,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한 작품 8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은 약자의 아픔을 농익은 필치로 풀어내는 솜씨가 여전하거니와 옛 가족이 해체되며 느끼는 불안과, 폭력의 시대가 여성에게 남긴 상처,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고독을 공선옥 특유의 활달한 서사로 들려준다.
공선옥 작가는 "올해 5·18 40주년을 맞았는데도 진상 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며 "80년을 겪은 세대이자 작가의 한 사람으로 문학을 통해 그날의 아픔과 상처를 달래고 진실을 알리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독일은 나치와 히틀러의 과오에서 비롯된 역사적 책무와 관련자 처벌, 사과와 진상규명 등으로 모범이 되고 있는데 우리는 40년 동안 뭘 했는지 부끄러움과 반성이 앞선다"며 "하루 빨리 그날의 진실이 알려지고 관련자 처벌과 피해자 치유가 이뤄지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17일부터 3월 25일까지 진행된 이번 공모에는 서울(79명)·경기(94명)를 비롯해 광주·전남 (57명) 등 전국에서 354명이 시 918편·소설 120편·동화 87편을 응모했다. 이번 수상자들도 전국 분포를 보인다. 본상을 수상한 담양의 공선옥 작가를 비롯해 시와 소설, 동화는 각각 경기와 서울·세종, 광주 출신 등이 신인상을 수상했다.
공선옥 작가는 "현재 또 다른 5월 소설 구상을 마치고 집필에 곧 들어갈 예정"이라며 "살아남은 자로, 작가로 다시는 이같은 비극과 슬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작품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남대 국문과를 나와 1991년 '창작과비평'에 중편소설 '씨앗불'을 발표해 등단, 여성의 운명적인 삶과 모성애를 뛰어난 구성력으로 생생히 그려내었다는 평을 듣는 작품세계로 주목을 받았다.
단편소설 '장마'로 제4회 여성신문 문학상을 받았고 그동안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1993), '우리들의 고향'(1995),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2000),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등을 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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