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피해 계속··· 냉해 직격탄 맞은 유자마을

입력 2021.01.28. 17:10 임장현 기자
기록적 한파… 나무 수관 얼어
마른 유자잎 사실상 '사망선고'
"푸르던 마을, 황색 마을 됐다"
27일 고흥군 풍양면 고소리에서 유자 농가 주인이 말라버린 유자나무 종자를 바라보고 있다.

"3년 전에 새로 심었는디 싹 다 얼어 죽어부렀어. 앞으로 뭐 해먹고 살랑가 모르것네요."

20여 개의 유자나무 종자를 심어놓은 밭을 쳐다보던 한 농민은 한참을 뒷짐만 진 채 말라 비틀어진 유자나무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새해 벽두부터 영하 10도가 넘어가는 기록적 한파를 맞은 고흥군 풍양면 대청마을. 예년같으면 마을 이름처럼 유자나무의 푸른 잎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어야 했지만 이날 찾은 마을에는 마른 나뭇잎만 무성했다.

27일 고흥군 풍양면 대청마을에서 이재용(62) 이장이 말라버린 나무를 살피고 있다.

유자나무의 잎이 마르는 것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추위에 잎사귀 자체가 얼었거나 유자나무의 수관이 얼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얼어버린 수관은 나무의 동면기가 끝나는 3월에 물을 끌어올리면서 터져버리고 수관이 없는 나무는 얼마 가지 않아 결국 죽게 된다. 말라버린 유자잎은 나무가 죽게 되는 전조현상인 셈이다.

수십 년 간 키워온 나무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농민들은 속만 타들어간다. 수관이 터진 나무 줄기는 되살릴 방도가 없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줄기가 있길 바라며 비료, 영양제 등을 뿌려 보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아버지 뒤를 이어 2대째 유자 농사를 하고 있는 이재용(62) 대청마을 이장은 "유자나무를 새로 심으면 최소 5년은 지나야 과실이 나오고, 10년은 돼야 소득이 나올 만한 열매가 맺힌다"며 "우리 마을 전체가 유자 농사를 하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말라가는 유자나무만 쳐다보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27일 고흥군 풍양면 대청마을에 2018년 한파로 잘려나간 나무들이 밭에 남아있다.

대청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8년에도 냉해를 입었다. 당시 전체 유자 생산량의 40%가 줄어드는 등 고흥군 대부분의 유자나무가 피해를 입어 상당 기간에 복구에 매달려야 했는데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대청마을의 경우 유자나무 1만 그루가 모조리 말라가고 있다는 것.

실제 이번 냉해로 고흥 지역 유자나무 경작지 대부분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고흥군에 따르면 관내 유자나무 경작지는 총 530㏊로 이번 냉해로 인해 전체 경작지에서 피해신고가 접수됐다. 군은 다음달 5일까지 피해신고조사를 끝낸 후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농민들의 근심은 커지고 있다.

지난 2018년 냉해 피해 당시 ㎡당 농약대 250원, 대파대 500원 등 피해를 메꾸기에는 현실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쥐꼬리 지원'으로 오히려 불만만 가중됐기 때문이다.

대청마을 한 주민은 "추운 날씨가 계속되니 올해 유자 농사를 못할 것 같다"며 "다른 농작물도 다 냉해를 겪고 있는데 유자를 계속할지, 다른 작물을 해야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임장현기자 locco@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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