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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한반도 최고의 탁월한 문화적 성취

입력 2020.10.21. 15:27 수정 2020.11.19. 18:08
조현종박사의 고고학 산책<19>
1등급 수장묘, 함평 초포리유적의 청동기와 천하석제 장신구
출토유물 전체 26점
한반도 최상급 무덤
주인공 지역 최고 수장
함평 초포리유적의 최초 신고유물(1987.02, 국립광주박물관)

인류 문명과 기술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고고학 주제는 청동기의 등장이다. 청동은 석기시대가 발전하는 동안 나타난 신기술의 산물이다. 새로운 야금술이 알려지게 되면서 사람들의 생활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식량 채집과 짐승 사냥을 위해 이동해야 했던 생활은 영구적인 정착과 작물생산으로 전환되었고, 사회는 강력한 청동기를 소유한 개인 혹은 집단을 중심으로 지배력이 강화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청동기시대는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과도기인 순동시대(純銅時代)를 거쳐 점진적으로 발전하였다. 순동시대는 신석기시대 말엽, 일부 지역에서 사용한 금속, 대부분 구리에 근거를 둔 고고학적 시대다. 말하자면 사우스 티롤의 얼음인간 외찌(필자의 고고학 산책 18)가 소지한 구리 날 도끼의 시대이다. 외찌는 기원전 3천300년 사람으로 구리 날 도끼를 가졌으나 그는 신석기인이며 청동기인은 분명 아니다.

인류 최초의 합금인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핵심성분인 구리와 주석을 결합해야 한다. 흥미로운 증거는 두 성분이 용해점은 낮지만, 따로따로 녹여서 결합한 청동 합금은 훨씬 단단하고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다.

드러난 적석목관묘의 하부구조(국립광주박물관)

청동을 가장 먼저 사용한 지역은 기원전 3천100년경 고대 이집트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기원전 1천700년경으로 가장 빠르고, 우리나라는 기원전 1천200년경에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청동기, 즉 청동제품은 대부분 제사의식과 종교적 의의가 있는 물품, 그리고 무기에 사용되었다.

청동기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전남 함평 초포리유적에서 시작되었다. 1987년 2월의 토요일, 귀가를 준비하던 나는 연구실의 선배(성낙준, 전 해양유물전시관장)를 따라 긴급히 초포리 현장을 방문하였다. 매장문화재발견 신고가 있었다. 사실, 고고학에서 발굴이란 매장된 물질의 노출과 기록, 그리고 그것의 문화적 복원 등 발굴의 조직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준비된 계획의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각종 공사의 중장비와 인부, 심지어 논밭을 일구는 농부들에 이르기까지 우연한 발견은 너무 흔하고 곳곳에 널려 있다. 실제로 발굴의 세계에서는 의도하지 않는 우연의 역할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하다. 1971년 엿장수가 신고한 화순 대곡리유적의 국보 청동기들도 우연의 발견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나는 꺼내진 엄청난 청동유물을 보고 깜깜 놀랐다. 청동검을 비롯한 청동제 14점(세형동검 1, 도씨검 1, 창 2, 꺾창 3, 방울 3, 도끼 1, 새기개 1, 끌 2), 숫돌 2점 등 전체 16점! 나는 그때 생전 처음으로 청동기들을 만져 보았다. 모두가 함평 초포리 사촌마을의 진입로 공사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마을 사람들이 흙과 돌덩이를 제거하면서 땅을 파내는데 청동기들이 수도 없이 계속 나와서 계속 돌을 들어내었다고 한다. 저녁이 되자 작업은 중단되었다. 그들은 청동기의 출토상황을 국립광주박물관에 알렸다.

천하석제 장신구 출토 광경(국립광주박물관)

유적은 기원전 3~2세기경에 속하는 적석목곽묘이다. 땅을 파고 그 안에 주검을 넣은 목관을 놓고 그 위를 돌로 채워 만든 무덤, 그 내부에 다량의 청동기를 부장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미 많은 돌 들이 빠져나갔지만 무덤의 바닥엔 일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정식 발굴이 시작되었다. 8일간의 조사에서 동검 3점, 거울(精文鏡) 3점, 방울 2점, 장신구 2점 등 10점의 유물이 새로이 확인되었다. 마을주민들이 발견한 16점은 아쉽게도 출토 위치를 잃었지만, 발굴에서 찾아진 10점의 유물은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족보를 찾은 셈이다. 특히 거울 3점은 천 주머니에 넣어진 채 피장자의 오른쪽 허리와 다리, 발 쪽에 놓여 있었고 그 가운데 2점은 거울 위에 동검이 올려져 있었다. 거울과 동검 등 청동기가 서로 포개져 확인되는 사례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무덤의 머리 쪽, 붉은 황토색 바닥엔 선명한 푸른색의 장신구 2점이 있었다. 천하석(天河石, amazonite)으로 만든 곡옥이다. 두 개는 양 귀의 간격과 같이 15cm 정도 떨어져 있고, 연결 구멍도 머리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귀걸이로 쓰인 것이다. 그동안 청동기시대의 천하석제 장신구는 대체로 2점씩 알려져 그것이 귀걸이일 가능성은 짐작하던 바였다. 하지만, 실제 유적에서 확인된 것은 초포리유적이 처음이다.

함평 초포리유적 출토 청동기 일괄유물(국립중앙박물관)

이렇게 초포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전체 26점이다. 귀걸이와 숫돌 각 2점을 제외한 청동기 22점. 특히 청동 무기류 10점, 동경 3점, 방울 5점의 부장은 이 무덤이 동시기 우리나라 최고의 우월적 지위에 놓여 있음을 방증한다. 당시 청동제 무기류가 제정일치 사회의 정치적 위세품이라면 거울(정문경)과 방울은 종교적 위세품이다. 대개의 무덤에서는 검과 거울의 조합이 1세트이지만, 3세트의 조합과 4종의 방울까지 출토된 초포리유적은 한반도 최상급, 즉 1등급의 무덤으로 보아 손색이 없다. 아마 그 주인공은 제사장이며 권력자인 지역 최고의 수장(首長)일 것이다. 마법의 거울과 청아한 청동방울, 그리고 청동 무기들은 신과 소통하는 그의 소유물, 즉 신물(神物)의 결정판이다.

초포리유적과 더불어 소위 1등급에 속하는 또 하나의 무덤은 정문경 2점과 동검 5점, 그리고 팔주령 2점과 쌍두령 1점이 출토된 화순 대곡리유적이다. 두 유적은 당시 한반도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는 영산강유역의 탁월한 문화적 성취를 보여준다. 초포리 청동기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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