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 박사의 고고학 산책

조현종박사의 고고학산책<17>비파형 동검

입력 2020.08.19. 18:25 김혜진 기자
고흥 운대리 고인돌 전경(1927년)

고흥 운대리 고인돌서 비파형 동검 세계 최초 발굴


인류의 오랜 도구는 말할 것도 없이 석기였으며,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청동기시대가 시작된다. 청동의 사용 시기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청동기의 출현은 세계와 그것을 소유하는 사회를 철저하게 변화시켰다. 청동야금술은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고 사회는 유력한 청동수장층을 중심으로 교역망이 광범위해지고 지배적으로 됐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청동기문화의 하나는 비파형동검이다. 그것은 기원전 1000년경에 시작되어 600년 이상 지속됐다. 비파형동검은 그 형태가 비파를 닮았다하여 붙인 이름이며 칼몸과 손잡이, 그리고 자루 끝에 달린 땅콩모양 장식 등을 결합한 조립품으로 세형동검에 앞서 출현하는 형식이다. 주로 중국 동북지역의 요하를 경계로 요서와 요동지역의 출토품이 많고, 한반도에서는 함경도를 제외한 거의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서남부지역 특히 고흥반도와 보성, 순천 및 여수반도의 지석묘에서 빈번하게 출토된다.

비파형동검의 연구는 1980년대에 본격화되지만 형식과 지역성, 기원, 사용주체, 즉 계통의 문제로 인하여 관련된 국가와 학자들 사이에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 명칭도 중국에서는 북방식 곡인청동단검 혹은 곡인청동단검으로, 한국 및 북한, 일본학계는 비파형동검, 비파형단검 또는 요녕식동검으로 부른다. 내용도 중국은 기원문제와 동호(東胡)설, 북한과 남한은 고조선설과 세형동검의 이행관계 등에 초점을 둔 글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파형동검의 최초출토지가 고흥 운대리라는 사실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학문의 기초인 연구사를 소홀히 한 까닭이다.

비파형동검, 우리나라 각지출토(국립중앙박물관)

1927년 3월, 아직 우리 손으로 고고학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인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고흥군 운대리에서 처음으로 고인돌발굴조사가 이뤄졌다. 담당자는 소천현부와 택순일 등 총독부박물관 직원 2인. 그들은 당시 집을 짓다가 발견된 마제석검과 석촉의 출토지인 운대리 현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미 훼손된 유적 외에 임의로 4기의 고인돌을 조사한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던 차에 일부가 드러난 석관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을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이 '집을 지키는 신의 거처'라는 여주인의 강력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인 학자들과 동행한 군청직원의 엄호, 제복 입은 경관, 그의 흰 포승줄이 아른거리는 상황에서도 운대리 여주인은 끝내 발굴을 허락하지 않았다.

허황함으로 돌아오던 그들은 놀랍게도 길 옆에서 조금 전의 그 석관, 실로 눈에 아른거리듯 꼭 닮은 고인돌의 석관을 발견한다. 스스로가 여주인의 신앙을 지키는 신의 도움이라고 여길 만큼 동일한 형식이었다. 흙을 제거하고 내부정리를 마치자 길이 2.85m, 너비 1.30m의 남북으로 판석을 세워 만든 장방형 석관이 드러나고 바닥의 중앙부에는 청동검이 놓여 있었다. 동검의 형태는 그때까지 한반도에서 출토된 세형동검과 달리 생소한 형식이고 게다가 상반부가 쪼개져 나가고 없었다. 길이 13㎝, 너비 6.4㎝이고 하단부에 2.7㎝ 정도의 슴베가 위치한다. 비록 반파의 것이지만, 이 동검이 세계적으로 처음 발굴된 비파형동검이다. 물론 그들은 동검의 문화적 특징이나 학사적 의미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신이 주신 은혜라고 감격했을 뿐이다.

비파형동검 출토상태(1927년)

그리고 1999년, 고흥 벌교간 도로공사로 인해 발굴조사를 하는 동안 새로이 동검 1점이 출토됐다. 1927년 발굴터가 내려다보이는 구릉의 운대리 13호 고인돌. 동검은 석관 바닥 가운데의 흑갈색 유기물 위에 놓여 있었고 석촉과 토기편, 그리고 숫돌이 함께 나왔다. 동검은 양날이 갈려졌고, 둥근 등날과 슴베의 홈은 서남부지역 비파형동검의 얼개를 닮았다. 내겐 동검아래에 놓인 유기물질의 정보를 놓친 아쉬움의 유적이지만, 두 번째 운대리식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것이다. 세계 최초의 발굴로부터 72년 만의 일이다. 이제 그 경로와 계통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사적 375호 광주신창동유적의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고, 국제저습지학회 편집위원, 고고문물연구소 이사장으로 동아시아 문물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초기도작문화연구' '저습지고고학' '2,000년전의 타임캡슐' '탐매' '풍죽' 등 연구와 저작, 전시기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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