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자비로 완화된 정의

@김정호 법무법인 이우스 변호사 입력 2022.01.16. 18:33

연말연시에 '레 미제라블'과 '베니스 상인'과 '돈키호테'를 읽었다. 새삼스레 서재에서 오래된 위고, 세익스피어, 세르반테스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법, 인간, 자비, 정의 이런 단어들을 대문호들의 대작들을 통해 되새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법의 가치와 인간적 가치의 충돌과 조화를 그리고 있다. 자베르 경감은 법을 실현하려는 가치의 상징으로, 주인공 장발장은 사랑과 헌신이 깃든 인간적 가치의 상징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레 미제라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공 장발장과 자베르 사이에 생기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묘사한 부분이다. 장발장이 살아가는 궤적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자베르다. 자베르는 '범죄에는 사정이 있을 수 없고, 법의 집행에는 동정이 있을 수 없으며, 범죄자의 갱생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 냉혈한이다. 인간미 없고 차가우며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한 사람이다. 자베르는 평생을 추적하고 체포하여야 할 범죄자인 장발장을 쫓다가 그에게서 양심과 용기, 그리고 희생과 배려를 본다. 그러면서 옳은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자신의 확신에 회의가 일어나 자기분열과 내면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한다. 법의 무력감과 인간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위고의 주제 의식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레 미제라블'에서 위고의 인간적 가치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 상인'에서의 자비로 완화된 정의와 비슷한 주제 의식을 함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비로 완화된 정의라는 표현은 법조 선배인 문형섭 변호사가 베니스 상인을 읽고 '어느 형사 변호인의 회상'이라는 부제를 달아 책의 제목으로 사용했고, 이정희 변호사가 그 뜻을 이어서 후배 법조인들에게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비로 완화된 정의는 베니스 상인에서 샤일록은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의 살을 베게 해달라는 소송을 걸었는데, 재판관 포샤는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권하는 장면에서 유래한 말이다. "자비를 가지고 정의를 완화할 때 지상의 권력은 신의 권력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이다. 오로지 정의만을 쫓는다면 인간은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다."

샤일록의 정의는 어떻게 되었던가? 재판관 포샤는 '계약준수가 곧 정의'라며 뜻을 굽히지 않던 샤일록에게 "계약서에 의하면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내는 것이니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초과하면 안 된다. 또 피를 흘려도 좋다는 내용이 없으니 피를 흘려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조건으로 살을 베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자비를 베풀지 않고 오로지 계약서에 써진 대로의 권리만을 주장했던 샤일록은 빚을 받기는커녕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는 죄목으로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자신의 생명을 구걸해야 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가 바라타리아 섬의 통치자가 된 산초에게 조언을 하는 대목이 인상 깊다.

"부자가 하는 말보다 가난한 자의 눈물에 더 많은 연민을 가지도록 하게.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의 편을 들라는 건 아니야. 정의는 공평해야 하니까."

"중죄인에게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내려야 할 경우에도 너무 가혹한 벌은 내리지 말게. 준엄한 재판관이라는 명성은 동정심 많은 재판관이라는 명성보다는 좋은 것은 아니라네."

"혹시 정의의 회초리를 꺾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뇌물(돈과 권력)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자비의 무게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자비 없는 정의는 잔인하다.'

진영논리와 편 가르기에 익숙하고 이분법과 흑백논리로 쉽게 선·악을 구분하며, 모든 가치를 정파적으로만 소비하고 있는 오늘날, 저마다 자신의 정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우리 사회의 세태에서 자비가 실종된 정의는 자칫 갈등과 반목을 더 확대할 소지가 크다. 자비의 무게로 정의를 꺾어야 하는 고민과 '자비로 완화된 정의'라는 경구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되새겨 봐야 할 삶의 지혜이고 교훈이다. 김정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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