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기후비상 편식예찬

@한순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입력 2021.01.17. 13:10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소설가이면서 역사와 경제의 흐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논픽션 작가이다. 그의 문체는 긴급한 행동을 촉구하기보다는 썩은 잔뿌리를 뒤흔드는 힘을 지녔다. 두 권의 책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2011)와 '우리가 날씨다'(송은주 옮김, 민음사, 2020)는 식탁 위에서 출발해 지구의 몸을 여행한 자의 고단한 기록처럼 읽힌다. 모험심과 여독이 함께 전해진다.

음식은 우리와 지구를 연결한다. "당신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들과 딸로서, 가족으로서, 공동체로서, 세대로서, 국가로서, 그리고 날이 갈수록 하나의 지구로서 먹는다."('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330쪽) 먹는 것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지구의 일부가 되어간다. '지구로서' 우리는 먹는 것으로 기후를 변화시킨다.

저자는 다양한 문헌 자료들과 통계 수치를 인용해 육식과 기후변화의 긴밀한 상관성을 설명한다. 공장식 축산업은 가축의 호흡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혐오스러운 냄새, 토지 황폐화, 수질 오염, 감염병 등 지구생태환경을 교란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기후재난을 촉진하는 원인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고기가 접시 위에 올라올 때까지의 과정을 관심있게 생각해보길 요청한다.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문장들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내가 다시 고기를 마음껏 먹기로 결정하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지만, 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를 느끼지 않는 미래도 상상할 수 없다. 가려 먹기는 전 생애에 걸쳐 삶을 규정하는 투쟁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우리가 날씨다', 89-90쪽) 고기 없는 밥상은 왠지 쓸쓸하다. 그래서 더욱 하루의 식단을 결정하는 일은 일상을 바꾸는 혁명의 순간이다.

'가려 먹기'를 잘못된 식습관이라고 단정할 일은 아닌 듯싶다. 고기보다는 야채를 '편식'하는 것만으로 기후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면, 동물성이 아닌 음식을 편애하는 것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축산업이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동물을 습관적으로 먹는 행위와 거리 두기를 하려고 애써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길 주저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실천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결국 태도의 문제다.

'대재앙(apocalypse)'이라는 용어는 '드러내다, 밝히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재난은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사실들을 드러내고, 우리의 어두운 표정을 밝힌다. "전 지구적 위기가 연이은 비상사태로 터져 나올 때,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드러낼 것이다."('우리가 날씨다', 40쪽) 글쓴이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 장면을 대재앙의 지구로 가져온다. 전쟁, 테러, 기후변화 등으로 인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했었는가?

육식을 포기하거나 지구를 포기해야 한다. 지구의 상황은 드러나고 밝혀진 것보다 더 심각하다. 가축을 키우는 데에 사용하는 곡물로 굶주리는 인구를 구제할 수는 없는 것일까? '4장 영혼과의 논쟁'은 발랄한 어조로 응답한다.

-"고기 단 1칼로리를 생산하려고 동물에게 26칼로리를 먹여야 한다고.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을 지낸 장 지글러는 10억에 가까운 인구가 굶주리는 마당에 바이오 연료에 1억 톤의 곡물을 쏟아붓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썼어. 사실 살인 범죄라고 해도 좋을 거야."('우리가 날씨다', 199쪽)

겨울 한파에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는 기후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난에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와 인권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고기를 (안)먹는다는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같은 것이다. 식사는 누구나 매일 빠짐없이 하는 일이니까, 동물성이 아닌 것들을 편식하는 것은 일상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을 바로 개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식탁 위에 올라온 고기의 붉은 살결이 다르게 보인다. 홍수에 잠긴 후에야 가보지 않은 길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한순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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