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거주불능지구'와 어떤 사랑

@한순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입력 2020.11.08. 13:45

기후재난과 팬데믹에 관한 새로운 용어와 다양한 이론들이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쏟아지는 책들을 다 읽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일이다. 깊게 생각해보기도 전에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들도 있고, 겨우 이해한 만큼 행동으로 옮겨보려 할 때엔 이미 유물이 되어버린 것들도 적지 않다.

이 마음의 혼란을 어떤 유형의 재난에 포함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감정과 생각에도 방역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한가롭게 '사랑'이라는 말조차 들먹일 여유가 없는 늦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이 가기 전에 소설 속의 한 단락을 다시 펼쳐본다.

-어느 순간 사랑은 문득 당신 속으로 들어오고, 그러면 당신은 도리 없이 사랑을 품은 자가 된다. 사랑과 함께 사랑을 따라 사는 자가 된다. 사랑이 시키고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이승우'사랑의 생애', 예담, 2017, 11쪽)

그는 사랑이 어느 날 문득 당신 속으로 들어와서 당신과 함께 살고 있다고, 당신이 사랑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당신의 몸에 들어와 당신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졌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나는 '사랑'이라는 촉촉한 말과 '함께'라는 단어에 이끌렸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를 연상했다.

'2050 거주불능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기후변화가 곧 세계 전체를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지구온난화를 연구해온 수백명의 학자들, 기후저술가, 기후운동가, 과학자들의 이론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전개한다. 돌이켜보면 지구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 혹은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닌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따끔하다.

-당신은 당신이 보고 싶은 모습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살고 싶은 행성은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중 누구도 지구 외에는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없다.(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김재경 옮김, '2050 거주불능지구', 추수밭, 2020, 342쪽.)

인간에겐 지구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집은 없다는 말이다. 지구가 우리를 선택할 기회만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기후재난의 위협이 우리 삶의 문턱까지 밀려와 지구는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이 아니라고 웅변한다. 그런데 솔직한 감상을 고백하자면,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 저 두꺼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무감각해졌다. 다음은 분명 나와 같은 독자를 향한 경고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너무나 오래도록 우화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기후변화의 영향력이 우화 속에나 존재하는 허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실제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2050 거주불능지구', 50쪽) 즉 기후변화는 "농작물 수확량, 전염병, 이주 패턴, 내전, 범죄율, 가정 폭력, 태풍, 폭염, 폭우, 가뭄", "경제성장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온갖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초래한 것은 우리이며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도 우리다. 이 책에서 '우리'라는 인칭이 자주 출현하는 이유를 알 법하다. 무엇보다 저자는 기후재난을 우화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내겐 사랑의 우화를 상상하지 않고서는 거주불능지구를 사랑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소설가 이승우가 내밀고 있는 사랑의 언어는, 강한 힘으로 상대를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단단한 몸을 움켜쥐는 연약한 넝쿨식물의 몸부림과 같은 것이다. '믿음직스러운 튼튼한 나무를 끌어안고 올라가는 넝쿨식물'의 몸은 연인의 연약한 몸을 비유한다.

-넝쿨식물의 언어는, '너는 내 것이다'가 아니라, '나를 구해주세요'이다. '내 말을 들어라'가 아니라 '나를 받아주세요'이다. 선언이 아니라 부탁이다.('사랑의 생애', 204-205쪽)

아픈 지구와 어떤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기후재난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지구를 향한 몸짓은 간절한 언어로 '선언이 아니라 부탁'이어야 한다. 한순미 조선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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