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R0값, 수학적인 저항을 생각한다

@한순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입력 2020.07.20. 09:10

이탈리아 소설가이자 물리학 박사인 파올로 조르다노는 '2020년 2월 29일'코로나19 발생 현황 지도를 보면서 음울한 빛깔로 단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때로 냉정한 어조로 희망을 전하기도 한다. 그는 감염자 1명이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인원을 수치화한 R0값(알제로, 기초감염재생산지수)을 낮춘다면 이 사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필요한 기간만이라도 단호하게 사회적 거리를 둔다면 마침내 R0값은 임계점 아래로 내려가 전염병의 기세는 수그러들 것이다. R0값을 낮추는 것은 우리가 코로나19에 저항한다는 수학적 의미다"(파올로 조르다노, 김희정 옮김,'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은행나무, 2020, 18-19쪽)

파올로 조르다노의 책에서 주의깊게 읽은 부분은 "바이러스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행동한다면" 혹은 "R0값을 낮추는 것은 우리가 코로나19에 저항한다는 수학적 의미다"라고 비교적 '단호하게' 표현한 문장들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거리두기는 바이러스의 무차별적인 전파력에 맞서 '수학적인 저항'을 개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수학은 숫자의 학문이 아니라 관계의 학문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은 전염의 시대를 사유하는 문법을 요약한다. 전염의 역사는 곧 접촉과 관계의 역사다.

언제부턴가 숫자를 확인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코로나19가 일상의 작은 습관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말들에서도 전염의 공포가 다녀간 흔적들이 발견된다. 낯선 용어들을 검색한 후 뜻을 겨우 헤아리고 추가된 예방 수칙을 점검하는 것도 일과가 된 지 오래다. 이토록 많은 외래어, 신조어, 그리고 의학 지식을 접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원근을 지배하고 조절한다. 내 몸이 바이러스와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의 숨결이 다른 사람의 숨결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내 안과 곁에 무수한 바이러스와 타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다른 상상과 생각이 번지기 시작했다. 자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얼굴들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였다. 보이지 않는 숨결로 이어진 연대의 별자리. 고독한 시간과 공간을 생각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비대면 시대, 생활 속의 거리두기가 지속되는 동안 고독은 일상이 되고 있다. 한편 바이러스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친구로 만든다. 알다시피, 세계보건기구가 선언한 팬데믹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모두'를 의미하는 'pan'과 '사람'을 뜻하는 'demic'의 조합어이다. 즉 모든 사람이 감염될 수 있다는 말이다. 팬데믹의 유행은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인간과 사물 간의 연결과 접속의 끈을 더욱 긴밀하게 드러낸다.

"공포(panic)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 속 삼림과 들의 신 '판(Pan)'에서 유래됐다. 판은 때때로 큰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끔찍했던지 주위가 온통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파올로 조르다노,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같은 책, 72쪽) 패닉과 팬데믹은 'pan'이라는 글자를 공유하고 있다. 반인반수의 몸으로 변덕스럽고 화를 잘내고 공포를 불어넣었던 판. 인간과 짐승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던 판은 팬데믹이 유행하는 동안,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 폭력, 불평등, 소외, 차별, 배제 등 어두운 자국들을 더 큰 목소리로 불러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반드시 다루어야 할 과제들이다.

이 예상치 못한 재앙의 긴 터널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이런 질문에 거의 강제적으로 직면하게 만든다. R0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전염의 공포를 이전과 다르게 사유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인문학, 의학, 인류학, 생태기후학, 지질환경학 등 여러 학문 간의 벽을 넘나드는 융합적인 지식이 요청된다.

나는 바이러스의 전파력에서 숱한 재난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떠올린다. 4·3, 6·25, 4·19, 5·18, 4·16 등과 같이 숫자로 기념하는 날들을 더 이상 반복해서 겪지 않으려면 잠재된 폭력의 빈도'값'을 줄여나가야 한다. 저 먼 역사를 떠올리지 않아도 폭력이 도래할 위기는 일상의 곳곳에서 감지된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지구환경에 행사한 폭력의 결과다. 이 모든 것이 '수학적인 저항'으로 맞설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나 바로 지금이 시작할 때다. 한순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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