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천~4천호 늘어 심각한 농촌 문제로
흉물로 방치 되고 때론 안전 위협하는 '흉기'
80대 독거노인 가구 많아 앞으로도 큰 문제
증여받은 자식들 관리 못하면서 매매도 안해
농어촌정비법 '철거 강제 규정' 손질 필요성
#사례1
함평군 함평읍 백련마을은 한때 만석꾼 마을로 불리며 성세를 누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35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다.
만석꾼 마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연간 250톤의 친환경 쌀을 생산해 생활협동조합에 납품하고 있어 마을 자체적으로 판로를 탄탄하게 갖췄다. 하지만 이 곳 역시 '사람이 없는' 농촌의 현실을 피하지는 못했다.
예전의 성세가 사라지면서 현재 마을에 남아있는 집은 모두 45호. 하지만 여기서도 10호 가량이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다.
그나마 5호 가량은 집을 상속받은 자녀들이 1년에 한두번씩 오가며 정비를 하거나, 외부인이 구입했지만 나머지 5호는 말그대로 인적이 끊긴지 오래다.
이곳 백련마을에 홀로 사는 노인들도 무려 12명, 즉 12가구가 80세 이상의 독거노인이라는 점에서 근 시일내에 빈집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마을주민들도 이같은 실정을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렇다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마을기금으로 빈집을 구입하기에는 여력이 안되는데다 그 경우 소유권 문제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또 앞으로 계속 늘어갈 빈집들을 모두 구입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현재로서는 무너져버린 빈집 담장을 주민들이 먼저 정비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정주여건을 스스로 개선해가는 것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
성정호 백련마을 이장(46)은 "농촌마을의 빈집들은 정주여건을 안좋게 만들고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개인 재산이라는 점에서 이렇다할 방법이 없다"며 "우리 마을의 경우 주민들 스스로 정비하고 행정기관에 적극적으로 정비사업 등을 신청하는 등 외지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례2
영광군 묘량면 장동마을은 46가구 90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곳 역시 전체 주민의 70%이상이 고령인구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광주에서 자동차로 20~30분 이내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지난해 1가구가 귀농해 들어온데다 예비귀농인 2명도 마을 정착을 준비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다른 마을보단 상황이 좋은 편이다.
귀농인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면서 현재 마을에 빈집은 3호에 불과할 정도지만 이곳 장도마을도 독거노인이 20명에 달하고 있어 근 시일내에 마을 절반에 가까운 집들이 '빈집'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주민들은 흉물로 변한 빈집을 마을기금으로 구입하기 위해 마을가꾸기 사업을 진행하는 등 스스로 대안을 마련해 가고 있다. 또 빈집 소유자에게 '들어와서 살 사람만 있으면 살게 해달라'고 양해를 이미 구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늘어갈 빈집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빈집이 많아지면 정주요건이 나빠지고, 그러다 보면 마을로 들어오는 인구 유입이 없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마을 자체 경쟁력을 키우고 정주요건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마을 스스로 살기 좋은 환경을 먼저 조성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외지인들도 들어올 수 있다는 마음에 주말농장 등 체험활동을 강화하는 등 마을을 스스로 변화시켜나가고 있다.
이운환 장동마을 이장(53)은 "마을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외지인, 즉 귀농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마을이 다른 마을보다 빈집이 적은 것도 그동안의 노력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이 먼저 변해야 빈 집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빈집만 1만4천여호…고령화 등 증가 요인만
고령화와 함께 농촌의 존립을 위협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바로 늘어나는 빈집이다.
인구유입보다 유출이 더 많고, 농촌을 지탱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65세 이상 고령인구인 전남지역에서는 매년 빈집이 3천~4천호 가량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3년간 전남의 농어촌 빈집 현황을 보면 2018년 8천399호, 2019년 1만1천359호 , 2020년 1만 4천727호 등으로 같은 기간 늘어난 빈집만 6천338호다.
농촌 빈집문제를 해결할 대안인 귀농의 경우 매년 2천 호 전후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귀농으로 인한 수요 2천여호를 포함한다면 매년 5천호에 가까운 집들이 빈집으로 나온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여기에 농촌 빈집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요인인 '독거노인' 인구수가 13만5천825명(2019년 기준)에 달하고 있다.
순천·나주 등 5개 시를 제외한 17개 군에 적게는 2천400여명부터 많게는 9천300명까지 독거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홀로 거주하는 이들의 수만큼 빈집이 근시일내에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농촌의 경우 독거노인들의 상당수가 80세를 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빈집 발생원인의 대부분이 홀로 계신 노인들이 돌아가신 뒤 상속을 받은 자녀들이 나중에 귀농하기 위해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아 그대로 놔두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했을때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농촌 빈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 역시 이같은 빈집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히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빈집이 오래 방치될수록 마을에 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개선해야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빈집이 여러 이해가 얽혀있는 경우도 많아 주민들이 정비를 위해 양해를 구하려고 해도 소유자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은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러다보니 짧게는 1년에서 많게는 십수년까지 아무도 살지 않은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 행정기관도 이렇다할 방법 없어…활용지원도 2년간 12건 그쳐
각 지자체마다 빈집정비 사업을 시행해 빈집 철거시 100만원, 환경 오염 우려가 큰 슬레이트 지붕 철거시 500만원을 각각 지원하고 있지만 대부분 소규모에 그치고 있다.
지난 2년간 전남지역 빈집활용실적을 보면 2019년 4개 시군에서 빈집정비 5건, 귀농인의 집 조성 2건, 지역행복생활권협력사업 1건,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1건 등 9건, 2020년 2개 시군에서 공공생활공간 조성 2건, 철거후 주차장 조성 1건 등 3건 등 총12건에 불과했다.
이처럼 빈집 활용 자체가 적은 이유는 빈집 자체가 개인 재산이기 때문이다.
사적재산을 마음대로 손댈 수 없어 소유자가 철거에 동의하거나 활용에 동의를 해줘야만 활용이 가능해 사적영역에 맡겨 놓고 사실상 손을 놓은 셈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농어촌정비법이 개정됐다.
지자체가 농촌 빈집 조사를 시행하고 빈집 정비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 지자체 차원의 체계적인 빈집 정비가 가능해졌다.
주민 누구나 정비가 필요한 집을 신고할 수 있게 됐으며 이 경우 행정기관이 이를 조사하고 소유자에게 빈집 상태와 정비 방법, 지원 제도 등을 안내하도록 했다.
또 소유자로 하여금 주변 생활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빈집에 대한 적절한 관리와 정비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 소유자의 관리 의무를 명문화했다. 더불어 행정기관에 매입해 생활기반시설, 공동이용시설 또는 임대주택 등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사적영역으로 남아있던 빈집 문제를 공공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대부분의 규정이 지자체의 의무만 강조하고 있을 뿐 소유자에게 지자체의 행정조치를 따르게 할 수단이 없는, 임의규정이라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시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빈집 문제를 두고 개인의 영역을 넘어 공공이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등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며 "농어촌정비법이 개정됐지만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제철거 권한이 빠져있다. 지자체가 통지 등 절차를 거쳐 빈집을 철거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도철원기자 repo333@srb.co.kr
[전남농촌 2021 리포트ㅣ인터뷰] "빈집 관리할 민·관 거버넌스 구축"
박시현 농촌경제硏 명예선임연구위원
대다수 빈집 소유자들 귀향 꿈꾸지만
거의 돌아오지 않거나 집 관리도 안돼
제대로 된 관리 위해선 민·관 협력 필수
빈집 관리기구 등 전담기구 조직 필요
"빈집 관리를 위한 민·관 거버넌스 차원의 전담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박시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민·관 공동 협력'을 꼽았다.
농어촌 정비법의 개정으로 지자체가 빈집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통한 체계적인 관리를 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빈집 정비를 위해서 마을 주민들의 신고 등 적극적인 참여가 먼저 요구된다는 점에서다.
박 명예선임연구위원은 "대부분의 빈집은 서울로 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간뒤 농촌에 계신 부모가 돌아가시면서 생기고 있다"며 "이렇게 상속을 받은 자식들 대부분이 언젠간 고향집으로 돌아오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팔지않고 있지만 돌아올 수 없거나 관리가 안되면서 빈집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대부분 지자체들이 소유권자가 따로 있기때문에 빈집 관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며 "이번에 농어촌정비법 개정되면서 행정기관의 관리권한은 강화됐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은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지금의 빈집 문제는 지자체의 문제가 아닌 법적인 문제"라며 "법에 명확히 강제 철거 등 강행규정에 대한 근거가 마련돼 있다면 시행은 지자체에서 법에 따라 조치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 개정으로 빈집에 대한 관리 권한이 세졌지만 가장 중요한 강제 철거 권한이 명시 되지 않았다"며 "빈집 주인에게 공고, 시정 관리 등에 대한 통지, 강제 집행 조치 등의 절차가 법에 우선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빈집 관리 부문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일본 역시 강제 철거 등에 대한 법적 제도가 마련돼 있어 행정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 역시 빈집 철거 등에 관한 법적 근거 마련과 함께 해당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철거 등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간 유대가 강한 농촌의 경우 마을에 빈집이 있어도 인간관계 등을 고려해 철거나 관리 등을 강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개인재산이라도 주변에 해를 많이 끼칠 경우 행정에서 강제로 철거하고 그 비용을 본인이 부담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고 분위기를 바꿔나가면 지금보단 결과가 좋아질 것이란 지적이다.
박 위원은 "마을 주민들의 입장에서 빈집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집을 관리하고 누군가 들어와서 살면 그만"이라며 "지자체 역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 빈집을 가급적 수리해 사용케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소유자에게 철거를 하도록 유도를 한 다음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때 강제 철거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위원은 체계적인 빈집 관리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민·관 거버넌스 형태의 중간지원조직 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의 빈집 문제는 행정과 개인, 둘 사이의 영역이지만 그 중간에 민간과 행정이 함께 참여하는 제3섹터를 만든다면 훨씬 좋은 해결방안이 나올 것"이라며 "주민, 소유자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고 행정과도 연계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관 거버너스 형태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어 "더 구체적으로 빈집 관리 기구, 빈집 관리 조합을 만들어 빈집을 고쳐 임대를 하거나 철거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좋을 것"이라며 "행정에서 할 수 없는 부분 역시 이러한 전담 조직이 생긴다면 보다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도철원기자 repo333@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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