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5월이냐, 어서 그걸 끝내고 새롭게 시작해야하지 않겠냐"
'이제 저 친구도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된 게 아닌가'
소설가 임철우(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5·18을 다룬 기념비적인 소설 '봄날'의 초판본 책머리에 소개한 이야기다.
'세상이 어찌 변해가는지도 모르고 답답하게 그러고만 있냐는 투'의 충고들 사이로 비아냥도 넘실거린다. 10여년 동안 한 작품에 매진하느라 작품발표가 뜸하기도 했단다. '봄날' 원고 중 5천500매 가량이 미발표원고라니 얼마나 많은 품을 들였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나만 혼자 미련스럽게 동굴 속에 처박혀 있는게 아닌가 조바심과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허나 5·18 당시 사진과 책꽂이 절반 분량의 자료를 뒤적이다 나도 모르게 울분에 차올라 책상에 앉아 컥컥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1980년 전남대 영문과 4년생 임철우는 그렇게 5권짜리 대하 기록소설을 광주에 바쳤다. '끝내 아무도 달려와주지 않았던 그 봄날 열흘, 저 잊혀진 도시를 위하여 이 기록을 바친다'('봄날' 헌정사)
'봄날' 발표 이태 후 1999년, 사회학 분야에서도 오월에 관한 기념비적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최정운 교수의 '오월의 사회과학'. '이전에 발표된 오월 관련 서적, 논문들과 완전히 다른' 이 책은 1980년 5월을 '절대공동체'라는 이름으로 1999년 현재로 소환한 명저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 대표 책 중 한 권으로 뽑혀 외국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들도 몰랐던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읽어냈다. '공수부대의 폭력이 폭력 대상자는 물론 목격하는 사람의 존엄성까지 짓밟기 때문에 시민들이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싸웠'음을 밝혀냈다. 폭력에 대한 공포와 수치를 목숨걸고 극복하며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그들의 '절대공동체'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지옥의 불길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다다른 곳이며 문자 그대로 유토피아(Utopia), 없는 곳, 다시 갈 수 없는 곳', 미치도록 아름다운 그곳을.
그도 임철우와 비슷한 장면에 맞딱뜨렸다.
"최 교수는 집안 고향이 그쪽인가?', '건 또 왜?, 웬일이야?"
최 교수의 5·18 연구에 대한 반응이었다. '불편하다고 해서 5·18을 연구한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지만 분명히 뭔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눈치는 일반적'이었다. 그는 '소문에 둘러싸인 무인도, 광주의 통한의 한 자락이 가슴을 스치'는 동질감을 마주했다.
그는 '5·18 참가자도 아니고, 근처에서 배회하던 사람도 아닌 주제로 5·18에 대해 책을 쓰는 것에 대해 멋적은 느낌과 죄의식(유학시절 미국 시카고서 5·18 필름을 보고 느꼈던)"을 가진, 광주나 5·18과는 직접적 인연이 없다. 서울의 유복한 중산층 출신으로 1980년 그해 유학을 떠나 80년대 중반에 돌아와 학계의 과제로 5·18 과 만나 '신드롬'에 빠졌다.
최진석이라는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오월 특별법 비난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곳 출신이라는 철학과 교수의 그림자라도 알고 싶어 학술연구 데이터를 뒤졌으나 5·18에 관한 이 교수의 흔적 하나 만나기 어렵다.
10년을 걸려 완성한 대하소설을 광주시민들에게 헌정한 임철우 교수의 후기는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두렵다. 누구보다 광주 시민들의 눈이 두렵다. 이 소설이 행여 5월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공감이나 존중 없는 '나만의' 뜨거움은 또 다른'폭력'이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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