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법안인가.
최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형법·모자보건법개정안에 대한 여성계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법안은 지난해 4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올 연말까지 새로운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데 따른 것이다.
개정안은 낙태를 '죄'로 규정한다. 임신 14주까지는 허용하고, 15~24주는 조건에 따라 허용한다. 24주가 넘으면 처벌 대상이다.
여성계는 반역사적이고 퇴행적이라고 비판한다. 법무부가 전문가 집단이나 여성 관련 단체와 논의도 거치지 않은데서 발생한 퇴행이라 지적한다. 헌재 결정에 위배될 뿐 아니라 지난 8월 자체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권고와도 배치된다. 위원회는 낙태죄의 비범죄화,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 보장 등의 법개정을 권고했다.
문제는 개정안이 위기에 처해있는 여성과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다.
15~24주 조건은 치명적이다. 성폭력이나, 가족에 의한 임신, 유전병 등이 있는 경우, 경제적 사회적 상황 등에 한해 허용한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가족에 의한 임신이라는, 유전병이라는 등등의 '증명'을 해야한다. 경찰서 등에서 서류를 만들어야한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다', '나는 유전병 환자다' 라는 주홍글씨를 이른바 법의 이름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의 심신에 가하는 인간적 심리적 '폭력'을 '법제화'한 꼴이다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학대받는 아이들, 불행한 가정사로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의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장애 등 또 다른 많은 특수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어떤 사태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존엄을 법의 이름으로 훼손한다. 이게 문명국가인가.
당최 법무부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국가가 보호해야할 취약한 여성들에게 낙인을 요구하는 반인권적 폭력을 법으로 강제하려하다니.
혹여 낙태죄를 반대해온 일부 종교집단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그들은 세상에서 추방당한 이들, 예를 들어 동성애자 등에 대한 보호를 공공연히 반대하는 집단이다. 인간세상에서 차별 당하고 돌을 맞는 이들을 종교가 품어주지는 못할망정 종교의 이름으로 처단과 배제, 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낙태반대에 앞장서 왔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이 집단의 압력에 굴복해 인권 법안 훼손에 동참해온 것도 문제인데 이제는 정부까지 대열에 나선 것 아닌가 의심이 모락모락거린다.
법무부는 낙태를 범죄화하기전에, 취약한 여성들에게 낙인을 강요하기 전에 임신과 출산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성교육부터 전면적으로 바꾸는데 나서야한다.
이 사회에서 아이들은 건강한 성, 피임이나 출산에 관한 제대로된 성교육은 받을 수조차 없다. 성교육이 아동에게 해를 끼친다며 그림책을 회수하는 수준이다. 청소년기 아이들의 원치 않는 임신이 대부분 무지에서 발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앞으로 3개월여의 시간을 거쳐 최종법안이 결정된다고 하니 전면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개정안은 국민, 취약한 국민들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법이 필요한 이들이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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