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를 여행하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 중 하나가 '카페 그레코(Caffe Greco)'다.
어떤 이들은 파르테논 신전이나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를 제치고 고요히 이곳을 찾기도 한다. 관광 명소가 넘치는 이 나라서 이곳이 세계인의 마음을 홀리는데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시간' 때문이다.
1760년 문을 연 이 유서 깊은 카페는 괴테, 스탕달, 찰스 디킨스, 안데르센 등 세계적인 문인과 예술인, 지식인들이 찾던 곳으로 그들의 향기를 그리는 이들에겐 놓칠 수 없는 공간이다. 이곳 에스프레소는 그 자체로 명성을 자랑한다. 커피맛을 모르는 이도 '괴테가 마셨겠거니'하며 약사발 들이키듯 한 잔 하고 넘어가기도 한단다.
뜬금없이 먼 남의 나라 카페를 구구절절 되뇌이는 것은 문득 '광주의 그레코'가 그리워서다.
이는 최근 발간된 '오래된 가게'가 불러일으키는 상념이기도하다. '충장로를 지켜온 상인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여러 가지로 각별하다. 우선 상인들이 직접 기획·취재·출판까지 도맡았다. 비용도 자신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저그럴 것이라고, 내용이 부실할 것이라 지레짐작하면 오산이다.
관공서에서 수천만원 예산 들여 만들어낸 정책연구서나 용역보고서 못지 않은 내용과 깊이를 갖췄다. 243페이지의 올 칼라로 만들어낸 이 책은 근현대 충장로 역사도 꼼꼼히 담아냈다. 화룡점정은 책의 뒷 부분을 장식한 '오래된 가게'를 지켜온 사람들이야기다. 역사와 사람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완벽한 인문서로 부족함이 없다.
지금이야 충장로가 상무지구 등 신흥지구에 밀리지만 한 때는 민족자본의 상징(개념있는 자본)이었고 부의 상징이었다. 그뿐인가. 과거 일제 강점기 이후 3·1운동에서 5·18까지 광주의 근현대사의 중심지였다.
그 중 현세대가 모르는 충장로, 진짜 충장로는 바로 4∼5가다. 광주우체국으로 상징되는 충장로 1·2·3가는 소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행세했던 지역이고 그에 대항해 뜻있는 광주사람, 민족자본으로 만들어진 곳이 광주극장으로 상징되는 4∼5가다.
일본인들이 극장을 운영하며 조선인 출입을 금하자 최선진 유은학원 초대이사장이 1935년 광주시민을 위해 이 극장을 지었다. 김구선생이 대중강연을 하는 등 시민들의 문화·정치의 주요 행사장이었다. 지금은 헐려 없어졌지만 광주 유지들이 시민들을 위해 만든 광주최초의 조선인 은행, 조흥은행도 광주극장 인근에 있었다. 이처럼 4∼5가는 광주의 자존심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비롯해 해방직후 터를 잡은 이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가게'에 따르면 해방직후인 1946년 문을 연 전남의료기상사를 비롯해 대를 이은 가게도 12곳에 달하는 등 30년 이상된 가게들만 해도 62곳에 달한다.
'그레코'를 꿈꾸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광주를 찾는이라면 이곳 충장로 4∼5가는 한번 들러야 광주 다녀왔다 말할 수 있는. 충장로4∼5가의 오래된 미래를 광주문화관광의 활력요인으로 만들고 여행자의 발걸음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은 이제 온전히 '우리'에게 지워졌다. 지역사회 역량이자 책무라 해야할 것이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및 문화체육부국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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