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광주를 보다.
10여년 전 뉴욕에 머무르던 시절 그곳의 다양한 그래피티를 보고 문득 광주를 생각했다. 비교 불가의 도시와의 격차가 아니라 이질감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공통점 같은 것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공감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예술가들이 몰려 살던 브루클린은 말할 것도 없고 맨해튼 일대에서도 심심찮게 그래피티(벽 등에 스프레이 등으로 낙서처럼 그려진 그림)를 만날 수 있었다. 후미지고 버려진 공간을 장식한 그래피티는 진흙탕 속에 피어난 연꽃 같다는 인상을 안겼다. 뉴욕 낡은 곳에서 피어오른 이들 그래피티는 광주의 허름한 식당이나 분식집, 후미진 풍경에 내걸린 미술작품을 연상시켰다.
그렇다. 버려진 건물, 식당의 허름함이 아니라 진짜는 그 너머에 있다.
낡음과 누추함 속에 아무렇게나,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한 그 그림들은 '예술작품'이다. 또한 그들-뉴요커와 광주사람들-에게 이 예술적 행위는 특별한 그 무엇, 고상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일 뿐이다.
그래피티는 뉴욕에 던진 젊은 예술가들의 절규, 비명, 혹은 그 무엇이다. 그 후미진 곳에 놓인, 한 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낙서', 그 들의 비명은 하나의 장르가 된다. 뉴욕 뒷골목의 낙서는 브루클린 출신의 장 미셀 바스키야라는 천재적 예술가를 거쳐 그래피티라는 장르로 탄생한다. 바스키야의 작품이 오늘날 1천400억원대를 웃도니 후미진 골목의 낙서 하나도 허투루 볼 일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광주는 '남종화'라는 지방으로는 드물게 자체 장르를 탄생시킨 곳이다. 이곳 예술가들은 가난과 차별을 딛고 세계 최고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신안 출신의 김환기 선생의 작품이 홍콩아트페어에서 132억원을 기록하며 한국인 최초로 100억원대를 넘어섰다. 그곳 지역민들은 여전히 안방이든 작업장이든 작품 하나쯤 걸어둔다.
소위 멸시와 천대의 '이발소 그림'이 광주에서 전혀 다른 신분을 갖게되는 경위다.
그림 걸릴 곳이 따로 있겠는가만은 이 말은 '이발소에서나 볼 수 있는 촌스러운 그림', '수준이 낮다'는 뜻으로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실재로 이발소에나 걸려있던 대량생산된 그림들을 말했다. 허나 번듯한 사무실은 말할 것도 없고 허름한 밥집이든, 분식점이든 어디를 가든 그림 한 장쯤 걸어두는 광주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외부인들이 광주서 놀라는 것들 중 하나는 단연 광주 음식이고 또 하나가 바로 이 '그림'이다. 어느 곳을 가든지 만나게 되는 그림 한 점. 그게 뭐 대수인가 만은 다른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헌데 그 멋과 여유가 넘쳐나던 도시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페어는 광역시 꼴찌를 기록하고 화가는 물론 예술인들이 살기 힘든 도시라는 아우성이 울린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가.
광주시가 젊은 기획자들과 페어의 변신을 꾀하는 한편 예술 지원 정책의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어찌 행정만의 문제이겠는가만은 지역 예술의 실질적 허파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건강한 생태계로의 숨길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문화체육 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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