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보다 붉은 오월이 또 한 번 지났다.
오월은 갔지만 오월은 계속되고 있다. 저마다의 마음 속에서 뿐아니라 공연작품으로, 미술작품으로, 문학으로, 학자들의 연구영역으로 끝없이 확장되며 영원히 되살아나고 있다.
80년 직후 오월을 이름조차 부를 수 없던 시절 문인과 화가들이 나섰다. 오월의 참상과 비탄을 고발하고 노래한 것을 시작으로 오월의 부활은 사회현장과 학문, 예술 영역을 넘나들며 계속되고 있다.
지역의 문화예술 영역에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문인들과 극단 토박이 등 연극인, 민중미술화가 등 문인과 예술인 중심으로 전개돼던 오월의 기록, 고발, 찬송의 대열에 공공기관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항쟁의 심장부 옛 전남도청에 둥지를 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오월의 전승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광주시도 정보문화산업진흥원과, 문화재단 등으로 예술을 통한 기억의 향연에 동참했다.
문화전당이 지난달 40주년 헌정작('나는 광주에 없었다')과 5·18 스토리 공모작('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을 선보였다. 이들 작품은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돼 의미를 더해준다. 40주년 헌정작은 향후 세계무대로, 5·18 스토리 공모전은 계속사업이다.
광주시도 지난해 정보문화산업진흥원을 통해 5·18을 주제로 영화산업지원에 나서 그 첫 작품들을 지난달 선보였다. 이들 작품은 전세계 영화제를 겨냥하고 세계시민들의 마음을 홀릴 예정이다. 이와함께 앞으로 광주시와 문화재단의 문화예술작품 공모에 예산의 일정비율을 5·18을 주제로 전개해, 장기적으로 5·18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5·18을 소재로한 작품지원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 예술인들이 끊임없이 오월을 생각케 함으로써 1980년 오월이 무한히 되살아나고 회자되도록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주말 광주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본보 주최로 5·18국립묘지에서 열린 '5·18 정신계승 전국 그림그리기·글쓰기 대회'가 주인공이다. 코로나 19의 기승으로 참여가 예전보다 줄었지만 관심과 열기는 뜨거웠다. 4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유치원부터 초·중·고, 일반까지 전국민 누구나가 5·18을 문학으로 그림으로 노래해보는 무대다.
이 행사가 여느 행사보다 중요한 점은 유소년, 자라나는 아이들이 유년시절부터 일상으로, 하나의 문화로 5·18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있다. 굳이 엄숙하지 않아도 좋다. 오월 어느 날 국립묘지에서 엄마 아빠, 친구들 손 잡고 글이나 그림으로 저마다의 5·18을 그려보는 것이다. 국립묘지 주변의 대 자연을 호흡하는 일은 온전한 덤이다.
지금은 광주·전남 어린이, 학생들이 중심이지만 어느날엔가 전국의 유치원생들, 어린이, 어른들이 몰려들 것이다. 5월엔 국립5·18 묘지에서 한판 글놀이 그림놀이 하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그렇게 5·18은 또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구축해가는 것이다.
가객 정태춘이 '오월엔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말라' 했던 그 아픈 오월이, 장미 보다 더 붉게, 더 뜨겁게 타오를 전망이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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