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했다.
다른 한편 ‘역시 임순례 감독이다’싶은, 멋진 감독을 배출한 우리사회에 작은 위안을 얻기도 했다.
지난주 (사)시민자유대학(학장 조윤호) 음악 동아리 ‘악담’이 1월 공부과제로 삼은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브라더스’가 던진 상념이다.
이 영화는 신자본주의가 횡행하기 전인 2001년에 개봉됐음에도 인간이라는 한 우주를 무참히 짓밟는 자본의 덫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독의 시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의 무력함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해볼 수 없는 자본의 거대한 벽과 체제를 생각케 한다. 청소년시절부터 꿈이었고 인생의 전부였던 음악을 좇아 밴드에서 연주하던 주인공이 시대의 변화에 밀려 팀원들을 잃고 축제장을 전전하는,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꿈을 내던져버리지 않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개인을 짓밟는 자본의 횡포에도 결코 좌절할 수 없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인간의 희망이 남아있다.
다른 한편 광주극장에서 상영중인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와 한국 영화사를 뒤 흔들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자동연상 됐다.
‘리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미안한게 아니라 ‘가족들을 위해 죽기살기로 일한 죄’를 통해 자본주의의 잔인함과 이 제도의 민낯을 드러낸다. 주인공 리치가 택배회사와 맺는 ‘0시간 계약’(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은 우리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도급제 와 노동착취와 자본의 횡포, 그 속에서 가진 것 없는 서민층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해도 자신의 처지를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런 처참한 현실에도 수많은 리키들은 목숨을 걸고 가족을 위해 내달린다. 그 암담한 현실에서 관객, 당신의 선택은 어디로 가야하나.
‘기생충’의 국제무대 수상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들썩인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각종 국제 영화제서 90개가 넘는 상을 휩쓸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미국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어서 올해도 ‘기생충’ 여진은 계속될 것 같다.
해외서 날아든 소식은 언제 들어도 반갑고 가슴 한켠을 설레게 한다. 다른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기생충’을 소비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외려 영화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듯 하다.
한국 최초니, 한류니 하는 수사에 집착하는 듯 해서다. 국제사회의 평가가 한국사회에 어떻게 내재화되느냐가 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만들며 선보였던 표준근로계약제를 비롯해 이 영화가 전하는 한국사회의 ‘끔찍한’ 양극화에 대해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성찰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앞다퉈 한국 최초 등을 찬양할 뿐이다. 대통령 마저도 지난해 칸의 황금종려상 소식에 수상을 축하할 뿐 ‘기생충’이 전하는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상처와 치유불가능해 보이는 아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일반인보다 먼저 사회의 병폐를 알아채고 대중에게 경고음을 전하는 이들이 예술인이다. 그들의 경고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우아함을 논할 일이 아니다. 현대라는 사막이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 예술인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일하는 죄’를 범하는 숱한 리키들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싶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국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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