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대표도서관 발걸음이 심상찮다.
최근 마감한 도서관 국제설계 공모에 61개국 817개 팀이 등록했다.
근래 한국 국제설계 공모를 뛰어넘거니와 전문가 참여의 국제 공모로는 역대 한국 최고를 기록했다.
대표도서관 국제 공모 흥행이 광주에 시사 하는 바는 여러 가지다.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 흔한 국내 최고니 최다니 하는 수식어와 차원을 달리한다.
전 세계 61개국 건축가들이 몰려들며 광주의 작은 도서관 건축 설계는 ‘세계 건축가들의 경연장’으로 급선회해 여타의 건축설계를 압도한다.
자연스럽게 광주의 도시브랜드와 인지도도 급격하게 올라간다. 건축계의 ‘듣보잡’이던 광주는 이번 공모로 단번에 세계 건축계의 시선을 부여잡으며 도시 브랜드를 한 차원 끌어올리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건축물, 새로운 문화상품에 대한 기대감이다.
세계 최고 심사위원에 세계적 건축가들의 경쟁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도서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이다. 시민들에게 공간적 심리적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관광객을 불러들일 중요한 문화상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번 국제 공모가 한국 국제공모 역사를 새로 썼다는 점도 놓치기 아깝다. 참가국, 참여 팀에서도 압도적이고 전체 60% 가량이 해외 팀이다.
최근 수도 서울의 상징이라 할 광화문 국제현상설계에 477개 팀이 응모한 것과도 비교된다. 광화문 설계비(40억 원)가 광주 대표 도서관(17억 원)의 두 배가 넘는다는 점을 살펴보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수도 서울의 상징건축물에 설계비도 두 배가 넘는 공모보다 광주의 작은 도서관 공모에 세계 건축가들이 더 높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번 대표도서관 공모는 도시정책의 철학과 전문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대표 도서관은 광주시가 ‘아트광주’를 조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공공 공간 품격 향상 프로젝트’의 하나다. 여기에는 시가 도입한 총괄건축가제가 힘을 발휘했다. 이번 국제공모 흥행 비결로 꼽힌 ‘세계적 심사위원 선정, 설계공모지침’등이 총괄건축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특히 공모지침은 향후 건축설계 공모의 하나의 표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침은 도서관 기능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가치와 방향을 요구했다. ‘광주의 새로운 이정표’, ‘사회·도시적 연대의 장소’ ‘역사와 미래를 아우르는 새로운 도시경관’ 등.
심사위원에 토마스 보니에르 세계건축가연맹(UIA) 회장, 세계적인 도서관 국제설계로 유명한 로버트 그린우드 등 국제 건축계 명사들을 초청했다. ‘세계 최고의 심사위원’에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설계공모지침’은 단번에 세계 건축계의 눈과 귀를 쏠리게 했다.
이같은 반가운 소식 뒷면에는 안타깝지만 광주의 어두운 건축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난개발과 고층건물. 개성 없는 성냥곽의 고층 아파트가 도시 미관은 물론 시민 삶을 망가뜨리고 미래세대에게 재난이 된다는 시민적 비판에 직면해있다.
특히나 이들 아파트도 광주시 도시건축심의위원회 등 다양한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장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성찰이 요구된다. ‘심의’의 방향은 합당한지, 기준은 마땅한지 지금이라도 다시 살펴야하는 이유다.
뒤늦게나마 광주시가 총괄건축가를 중심으로 ‘광주 도시 건축선언’을 준비하고 있고 광주시의회가 최근 관련 조례 개정에 관한 청원을 통과시켰다. 시민사회단체도 새로운 건축문화를 촉구하고 있다.
광주시와 시의회, 시민사회가 함께 내일을 준비하는 귀하고 드문 시간들이 될 것 같다. 초심 잃지 말고 나가길 기대한다.
조덕진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국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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