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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가들 명예회복 '성큼'

입력 2020.05.21. 17:38 수정 2020.05.21. 17:42
문 대통령 국가폭력 피해자
재조사 통한 신원회복 강조
장재성 선생 재평가 목소리
김상곤 등 기념사업회 구성
27일 창립식서 서훈요청 전달
학생비밀결사 성진회 결성 기념사진. 신봉수 역사교사 제공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사를 통해 다양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만큼 그간 저평가된 국가폭력 피해자 전반에 대한 재조사를 통해 신원 회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1일 광주제일고등학교 등에 따르면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현 광주일고 총동창회장)을 중심으로 학교 동문들은 '장재성 기념사업회' 구성을 위한 창립총회를 준비중이다.

장재성 선생

장재성 선생은 1926년 11월 광주고보 재학 시절 독서회의 전신인 '성진회'를 결성해 맹휴투쟁을 이끈 인물이다. 일본 주오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1929년 6월 중퇴 후 광주로 돌아와 독서회 중앙부를 조직, 책임비서를 맡으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듬해 전국 350여개 학교에서 5만여명이 참여해 '제2의 3·1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학생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이 바로 장 선생인 것이다. 이후 주동자로 지목돼 구속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해방 전까지 꾸준히 항일운동 등을 펼쳤다. 하지만 1950년 시국사범으로 광주형무소에 수용된 뒤 행적을 확인 할 수 없었다. 당시 총살당했다는 전언만 남았을 뿐이다.

유족들은 장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수 차례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해방 정국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전남지부 조직부장과 민주주의민족전선 전남대표로 활동한데다 북한 해주 인민대표자 회의에 참석하는 등 남과 북을 오가며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1943년 장재성 선생이 부인 박옥희, 아들 상백씨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이 사진은 유족들에 의해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실제로 장 선생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상자로 결정됐지만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2005년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54명에 대한 포상이 이뤄질 때도 같은 이유로 탈락했다.

이에 광주일고 후배들은 장재성 선생의 업적을 재평가, 신원 회복을 위한 활동에 돌입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오는 27일 장재성 기념사업회 창립식(산수동 '오월의숲'))을 갖고 하유성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장 선생을 비롯해 72명의 서훈 요청서를 전달 할 계획이다. 또 오는 7월6일에는 광주일고 교정에서 '장재성 선생 추모제'를, 연말에는 포럼 및 토론회 등도 추진 할 방침이다.

장재성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항일 운동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정작 핵심 인물인 장재성 선생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장 선생을 비롯해 신원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관련 활동가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주현정기자 doit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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