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윤봉길 의사 '유묵'

@김영태 입력 2020.07.12. 17:55

윤봉길 의사는 대한의 자손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대한독립의 영웅이다.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32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영원한 청년 의사(義士)'다.

윤 의사는 일제 강점기인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거사를 일으켰다. 그날 공원에서 열린 일제의 전승기념식에는 일본군 상해 파견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등이 참석했다.

신분을 속이고 기념식장에 잠입한 윤 의사가 던져 제대로 터진 수류탄에 시라카와 등이 즉사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버렸다. 중일전쟁 승리를 자축하던 일제의 군부 주요 인사들이 식민 국가의 한 청년에 의해 폭살당한 쾌거였다.

윤 의사의 거사는 같은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 열사가 그 해 1월8일 일본 동경에서 일본왕을 폭살하려다 실패한 직후였다. 일제의 경계와 경비가 그 어느 때보다 삼엄했다. 윤 의사는 거사 직후 현장에서 붙잡혀 그들의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오사카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총살됐다.

윤 의사는 1918년 고향인 충남 예산군의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3·1운동에 자극받아 식민지 노예교육을 배격하며 자퇴했다. 국내에서 농민계몽과 독서회 운동에 앞장서다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만나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겠다고 다짐한 뒤 이같은 거사를 일으켰다.

그런 윤 의사의 '유묵'이 화제다. 고흥군과 그의 유묵 등을 소유했던 매매자간에 벌어진 송사 때문이다. 최근 고흥군이 윤 의사의 유묵, 김구 선생의 서신 등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급 진품으로 판단하고 사들이면서 매매자에게 지급했던 대금 일부를 돌려달라는 소송에서 이겼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과 직접 진행한 재감정 평가에서 위작이거나 진품임이 불분명하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재판부도 '위작'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매매자는 이에 반발, 진품이라며 고흥군이 지급하기로 했던 6억원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숭고한 독립운동의 영웅이 세상에 남겨놓은 유묵의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안타깝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무엇인가 큰일을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장부가 집을 나가 살아돌아오지 않겠다"는 서신을 남기고 만주로 떠났던 그였기에 더욱 그렇다.

김영태 주필 kytmd8617@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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