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남북관계 속 치킨게임(chicken game)

@윤승한 입력 2020.06.25. 18:28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위험천만한 자동차 게임이 유행했었다. 도로 양쪽에서 자신의 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상대방 차에 정면으로 돌진하는 것으로, 충돌 직전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경기다. 지는 쪽은 겁쟁이를 뜻하는 '치킨(chicken)' 취급을 받았다.

이른바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 혈기 등등한 젊은이들의 자존심을 내건 한판 승부였다. 제임스 딘 주연의 1955년 개봉작 '이유 없는 반항'의 대표적인 명장면 중 하나로 화제가 됐다. 치킨게임은 극단적 경쟁을 의미한다. 1950부터 1970년대 사이 미국과 소련 간 극심한 군비경쟁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최근 남북관계가 대립 양상을 보이는 등 요동치고 있다. 상징적인 사건이 지난 17일 나왔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다.

그는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6·15선언 20주년 기념축사를 "뻔뻔함이 묻어나오는 궤변"이라고 혹평했다. 문 대통령을 향해 '역스럽다' '꼴불견' 등 원색적이고 도발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청와대 반응도 예전에 없이 강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맞받았다. 이어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 책임"이라며 "북측은 앞으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엄중했을 때도 최소한 상대 정상에 대한 직격은 자제하고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남북간 설전은 정상적인 관례를 넘어 대단히 이례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설전에 이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대남 확성기 재설치, 대규모 대남 선전 전단 살포 예고 등의 적대적 후속조치가 이어졌다. 갈등 양상이 선을 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긴박하게 전개되던 대결 국면은 지난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 메시지가 나오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브레이크 없는 치킨게임의 결말은 공멸이다. 자존심은 지키겠지만 남는 건 영광 없는 상처 뿐이다. 이겨서 죽는 길이기도 하다. 전제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이제라도 제동이 걸린 건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윤승한 논설위원 shyoon@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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