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특급호텔 프러포즈한다는데
5성급 전무, 관광트렌드 따라잡기 꽝
국제회의 유치해도 마땅한 호텔 없어
고부가가치 MICE산업도 경쟁력 제로
추진 족족 불발···"전략적 유치 필요"
[스페셜기획ㅣ노광탈 프로젝트③ 호캉스, 광주엔 없어요]
"결혼할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해주고 싶었는데 광주에 마땅한 호텔이 없어서 다른 지역 가서 했어요. 친구들끼리도 호캉스 많이 하는데 보통 서울이나 부산으로 많이 가고요. 진짜 광주에도 호캉스 제대로 할 만한 곳 생겼으면 좋겠어요."
나주에 거주하는 공무원인 박모씨(29)는 "일 년에 두세 번씩은 꼭 친구들과 함께 호캉스로 소문난 특급호텔을 가는데 주로 서울과 부산"이라며 "광주에서 홀리데이인호텔이나 라마다호텔이 있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솔직히 호캉스라기보다는 숙박에 맞춰져 있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 산하 한 기관에서 국내외 대형 회의 유치를 담당했던 한 간부급 인사는 "굵직한 회의를 유치할 때 광주에서 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지만 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규모를 갖춘 특급호텔이 없어 번번이 막히거나 애를 먹고 있다"며 특급호텔 필요성을 호소했다.
국내 대표 여가 활동과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호캉스와 마이스(MICE) 산업의 성장으로 특급호텔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광주에서는 이를 충족할 만한 특급호텔이 부족해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 여가 문화이지만 광주서는 '그림의 떡'
호텔에서 휴가(바캉스)를 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호캉스'는 어느덧 국내 대표적인 문화가 됐다. 통상 4성급 이상의 특급호텔에서 이뤄지는 호캉스는 단순히 숙박하는 것을 넘어 일상을 탈피해 호텔에 체류하면서 차별화된 경험을 누리고 이를 다시 SNS 등에 공유하면서 높은 만족도를 주고 있다. 제주도나 부산처럼 휴양관광지를 가지 않더라도 도심 내에서 휴양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심 내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특급호텔이 전국 대도시에서 자리를 잡는 추세다.
특히 여럿이서 가면 그렇게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경험과 고급 서비스, 탁 트인 풍경을 누릴 수 있는 특급호텔은 MZ세대로 불리는 젊은층에게 폭발적 인기다.
17일 '호텔스컴바인'이 제공한 '2021 호캉스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희망하는 여행 유형을 묻는 질문에 호캉스를 꼽은 이들이 36.8%로 가장 많았다. 6개월 내에 호캉스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전체의 32.4%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해외 여행을 비롯해 다양한 여행에 제약이 생기면서 호캉스가 더욱 대세로 자리 잡은 것도 한몫했다.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소비 여력이 충분한 중장년층에서도 특급호텔은 가족모임이나 가족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광주시민은 멀리 가지 않고 광주에서도 호캉스를 누리고 싶어하지만 특급호텔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광산구 우산동에 거주하는 김은주(55)씨는 "지난 해 가족과 처음으로 호캉스를 했는데 너무 좋아서 그 후로 계속해서 가고 있다"면서 "광주에는 호캉스를 갈만한 데가 없어 아쉽다"고 전했다.
실제 17일 기준 광주 내 특급호텔은 2곳에 불과하다. 이마저 호캉스의 핵심인 수영장이 있는 곳은 '홀리데이인 광주'이지만 실내수영장으로 '호캉스족'이 원하는 야외 풍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고급수영장은 아니다. 반면 다른 대도시들은 호캉스 문화 확산과 호텔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특급호텔이 지속해서 느는 추세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특급호텔(4·5성) 개수는 서울이 66곳으로 가장 많다. 이어 부산과 인천 12곳, 대구 5곳, 울산 3곳, 대전 3곳(심사 중인 '오노마 대전' 포함), 광주 2곳이다.
◆체류 관광 핵심…"글로벌 브랜드 호텔 필요"
특급호텔은 단지 여가 시설로서 기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행과 비즈니스 등 국내외 이동이 활발하고 또 관광산업이 비중이 커지면서 특급호텔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여행객들은 숙소를 정하고 지역에 체류하면서 소비를 하기 때문에 '체류형 관광'의 핵심 요소다.
광주 내 기업들은 물론 광주·전남혁신도시에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인 한국전력을 비롯해 많은 공기업이 있어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방문한 이들의 특급호텔 수요도 많다. 문제는 광주가 특급호텔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데 있다.
광주지역 대학에서 호텔경영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우리가 해외로 여행할 때 힐튼호텔이나 매리어트호텔처럼 브랜드 있는 특급호텔을 찾는 것은 브랜드호텔에 대한 신뢰와 고급스러움이 폭넓게 인정 받고 있기 때문에 수요 또한 많다"면서 "광주가 도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브랜드 있는 5성 특급호텔 하나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 교수는 자신이 호텔경영을 가르친 학생이 취업할 수 있는 호텔 일자리가 지역에 없어 타지역으로 떠나는 것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때 여실히 드러났다. 귀빈 등 VIP급 인사에 대해서는 5성급 호텔에 묵게 해야 하지만 광주 내 이를 만족하는 호텔이 없어 멀리 여수까지 보내 엠블호텔(현 소노캄여수)에 묵게 해야 했다.
특히 특급호텔이 부족해 숙소를 쪼개기하거나 광주 내 비즈니스 호텔과 나주 혁신도시에 있는 3성급 숙박업소까지 동원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특급호텔 없어 마이스산업 경쟁력 약화"
무엇보다 특급호텔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부가가치가 높은 마이스(MICE)산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실제 마이스산업 경쟁력을 평가할 때 전시·회의시설과 숙박시설 규모로 평가한다. MICE 산업이란 회의, 인센티브 여행, 컨벤션, 전시회 등을 포함한 비즈니스 분야의 복합 전시 산업으로 대규모의 인원이 도시에 방문해 체류하면서 숙박, 음식, 여가 등에 소비를 하면서 지역에 파급되는 경제적 효과가 크다.
한국관광공사의 '2019 MICE 참가자 조사'에 따르면 광주·전라 지역의 경우 회의 참가자는 1인당 약 310만원 가량을 쇼핑·숙박·식음료 등에 소비했다.
대형 국제회의 등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1천명 이상 인원이 동시에 회의 등 행사를 할 수 있는 5성급 특급호텔이 필요한 경우가 다수다. 이 때문에 광주마이스산업 관계자들은 대형 행사를 유치하기도 힘들뿐더러 유치한다 하더라도 숙박은 여수 등 타지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호소했다. 턱없이 부족한 특급호텔에 광주의 마이스산업 경쟁력이 발목 잡히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정순애 광주시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9년 6월3일 제280회 정례회 5분발언을 통해 "광주를 찾은 많은 외국관광객들이 광주가 아닌 서울이나 여수 등으로 숙박을 위해 떠나고 있고 국내 관광객들도 대부분 당일치기 일정으로만 광주를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급호텔 부족은 대형 행사 유치 차질은 물론, 도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며 마이스 산업 육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광주시가 개최 건수에 비해 매출액이 낮은 이유는 대형 행사를 유치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특급호텔 전략적 유치…광주는 어등산·신세계 무산
특급호텔이 가지는 유무형의 파급효과로 광역지자체는 특급호텔을 전략적으로 유치하려고 시도한다. 최근 대전 유성구에 문을 연 '대전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에는 신세계 계열의 특급호텔 '오노마'가 입점했다. 오노마는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과 제휴한 400평 규모의 초고층 수영장 등이 포함된 특급호텔이다. 현재 호텔등급 심사 중이지만 최소 4성 또는 5성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곳 호텔은 대전컨벤션센터(DCC)가 바로 옆에 있어 마이스산업 시너지가 기대되고 있다.
특급호텔은 수익성이 좋지 않아 대기업에서도 국제적인 도시인 서울이나 부산 등이 아니면 선뜻 나서지 않는다. 대전시가 입찰 과정에서 신세계 측에 지역 마이스산업과 지역 경제 활성화, 호캉스 수요 등을 이유로 특급호텔 건립을 요청했고 신세계 또한 상업시설를 운영하는 대가로 특급호텔 건립을 받아들인 윈-윈 전략이었다.
광주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대기업에 특급호텔 유치를 요청하거나 민간투자 방식으로 특급호텔을 건립하려고 했다. 지난 2015년 당시 윤장현 광주시장의 요청으로 광주신세계가 서구 화정동 이마트 부지에 7천억원 규모의 특급호텔과 복합쇼핑몰을 추진하다 무산됐다. 광주시가 광산구 어등산 일원에 추진하는 특급호텔이 포함된 '어등산관광단지'는 상업면적이 지나치게 축소되는 바람에 대기업들의 불참으로 현재까지 삽 한번 뜨지도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 등 마이스산업 선진도시는 물론 부산이나 대구, 대전 등 대부분 주요 도시에서도 마이스산업은 핵심 시설인 컨벤션센터(전시시설)를 중심으로 특급호텔, 쇼핑몰, 미술관 등 다양한 시설들을 복합화하는 추세다. 마이스 참가자들이 업무와 쇼핑, 휴양을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집적도를 높여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실제 한국은행은 2017년 보고서를 통해 광주 마이스산업이 좋은 숙박시설 부족, 쇼핑·관광 등 부족해 파급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광주의 MICE 행사기간은 대부분(88.8%) 1일로 전국(68.7%)에 비해 당일 행사가 많았다는 것이다.
광주 마이스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갖고 특급호텔을 비롯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설들을 전략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이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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