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전 손재형'전, 서예의 실험적 시도 눈길
'AES+F'전, 모순된것의 혼합 메시지 뚜렷
최근 특별전을 열고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을 공개한 전남도립미술관이 이와 함께 새로운 전시를 잇따라 열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을 보러 먼 길을 온 관람객들을 그냥 보낼 순 없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2021 전남수묵비엔날레를 기념한 특별전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은 1일, 'AES+F 길잃은 혼종, 시대를 갈다'는 3일 각각 오픈하고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특히 세 전시는 전남도립미술관이 개관 기념 전시를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자리로 꾸몄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준비돼 특별함을 더한다.
먼저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전은 진도 출신으로 '서예'라는 용어를 창시하고 일본인으로부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되찾아온 인물인 손재형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이 전시는 서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보통 '서예'하면 정갈하게 쓰여진 한자말을 떠올리는데 손재형의 작품은 서예의 현대적 조형미를 느낄 수 있다.
그는 한자 뿐 아니라 한글 글씨에 전서와 예서 필법을 응용한 다양한 작품도 실험했다. 글자의 뜻대로 글씨를 마치 그림처럼 쓰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산'이란 글자를 산의 모양을 바탕으로 재해석해 그리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최근의 캘리그라피가 떠오를 만큼 현대적이고 회화적이다.
'무슨 뜻인지나 알아야 작품을 보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걱정일랑 접어두시라. 한자와 친하지 않은 젊은 세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도록 작품명과 함께 작품 속 글 해석과 훈음을 달아두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그룹 AES+F의 국내 최초 단독 기획전 '길잃은 혼종, 시대를 갈다'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관람객들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자리다. AES+F는 러시아 출신 작가 4명으로 구성된 그룹. 베를린을 거점으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들은 한국에서 미발표된 4개의 연작을 선보인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기후변화, 환경문제, 인종갈등, 경제적 약자 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일찍이 1980년대부터 이같은 이슈를 가지고 오랜기간 작업해 온 ASE+F이기에 이번 전시는 더욱 의미를 갖는다.
전시명처럼 이들의 이번 작품에서는 모순된 것들이 한데 뒤섞여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뒤집힌 세상' 시리즈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뒤바뀐 역할을 하거나 돼지가 정육점 주인을 도살하는 등 사회적 인식과 구조를 뒤집어 보여준다. 어른 여성 키와 비슷한 크기의 7개 조각상으로 구성된 '천사-악마'는 고딕 건축양식에서 볼 수 있는 괴물과 르네상스 시기 예술서 흔히 보이는 아기천사를 합쳤다. 이를 통해 시대와 문화권 앞에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어지는 '신성한 우화'는 조반니 벨리니의 '신성한 우화'를 모티프로 현대적 영웅을 보여준다.
'투란도트2070'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작품으로 거대한 8개의 스크린에 비춰진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모티프로하는 이 작품은 앞서 본 작품들에서 나타난 모순된 것들의 혼합, 뒤섞기, 뒤집기 등의 특징을 압축한 것이라 보면 된다. 원작 속 잔인한 여성군주의 모습이 아닌 연대하는 여성군주의 모습을 통해 현시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AES+F는 건축, 디자인, 패션사진 분야에서 활동해 온 4명의 작가가 모인 그룹답게 시각적으로 선명하면서도 세련된 작품을 보여주고 있어 이번 전시는 SNS를 배경으로 젊은 층의 인기 또한 기대된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은 "광양까지 발걸음을 한다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오는 것인데 이건희 컬렉션 뿐만 아니라 또다른 성격의 전시들을 선물처럼 선사하고 싶었다"며 "우리 전통 미술의 아름다움을 돌아보고 또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미래를 들여다보는 이번 전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전은 11월 7일까지, 'AES+F 길잃은 혼종, 시대를 갈다'전은 12월26일까지 진행된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 산에 안겨 강에 기대어 이어 온 우리네 삶 오상조 작 '영산강' 예로부터 산과 강은 아주 좋은 회화 소재였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은 산과 강을 애호하며 화폭에 담아 왔다. 왜일까. 산과 강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 지역 만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을 넘어 산과 강은 이들의 넉넉한 품에 안긴 민중의 정신을 이루는 뿌리다. 우리는 무등산과 영산강의 품에 안겨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이같은 일상이 너무나도 당연해 어미와 같은 무등산과 영산강의 소중함을 잊고 있지는 않나. 이같은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자리가 마련된다.광주시립미술관이 '무등에서 영산으로'전을 지난 20일부터 5월 19일까지 본관 1, 2실에서 진행한다.이번 전시는 지역 공립미술관으로서 우리 지역의 미적 가치와 무등이 주는 인문 사상, 영산강이 주는 미래에 대해 조망하는 자리다.우리 가까이에 있어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그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무등산과 영산강의 아름다움과 가치, 풍경, 삶, 문화, 역사를 회화, 사진, 설치, 아카이브 등에서 찾아본다.배동신 작 '무등산'전시는 소장작품을 통한 광주인의 삶과 멋,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시작해 무등산을 소재로 한 전통적 회화와 현대의 예술인 사진을 통해 무등산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기상을 보여준다. 대형 사진 작품은 점으로 우주와 같은 무등산을 그린 회화작품과 어우러져 무등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색다르게 선사한다. 영산강을 소재로 한 대형 벽면 설치 작품은 무등산과 영산강은 하나로 연결돼 있으며 영산강이 어머니의 강인 이유를 눈으로 확인하게 해준다.계단을 지나서는 특별 섹션이 이어진다. 시립미술관 순수 소장품 중 1946년부터 1999년까지 그려진 무등산 그림 8점을 한 번에 전시해 20세기 화가들이 무등산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김형수, 양수아, 배동신, 임직순, 김영태, 박상섭 등 20세기의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광주미술사적, 조형적으로 무등산을 살필 수 있다.정송규 작 '무등을 바라보다'아카이브 자료도 풍성하다. 무등산과 영산강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무등정신을 문화적, 사상적, 예술적으로 공부하고 체화해 새로운 무등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무등공부방의 미술작품과 활동자료 등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인다.사진의 기록성을 중시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꾸려진 5명의 영산강 사진그룹은 3년 간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산강의 시원지인 담양에서부터 목포 하구언까지 136.66㎞를 답사하며 찍은 사진도 만날 수 있다. 영산강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더불어 강가를 따라 자리한 역사유적, 삶의 모습 등이 담겼다. 영산강에 대한 최초의 대형 프로젝트로 영산강의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 의미를 더한다.조진호 작 '소쇄원'김준기 시립미술관 관장은 "무등산과 영산강을 한 번에 다룬 최초의 대형 전시로 지역민 마음의 고향인 무등산과 영산강에 대한 위로와 더 큰 도약을 꿈꾸는 자리다"며 "이번 전시가 무등산과 영산강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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