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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나주 정도전 유배지

입력 2020.07.23. 09:24 수정 2020.07.23. 11:43 @김승용 eksy1221@naver.com
백동마을 들판에서 잉태된 '혁명조선'의 꿈

그는 혁명 이룬 뒤 토지개혁과

종교개혁, 군사개혁을 단행하면서

부패한 사회 각 분야에

새로운 질서를 정립했다

그의 정치이상은 민본주의

관료지배 체제였다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에는

물리적 힘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혁명을 긍정했고, 그것을 실현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낮고 기울어 마음이 답답하였다. 하루는 들에 나가 노닐다가 눈썹이 흰 농부 한 사람을 만났다.

삼봉 "노인장 수고하십니다."

농부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의복이 남루하나 옷자락이 길고 소매가 넓으며 행동이 의젓한 것을 보니 혹 선비가 아닌가? 수족에 굳은살이 없고 뺨이 도톰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온 것을 보니 조정의 벼슬아치가 아닌가? 무슨 일로 여긴 왔나? 그대는 죄인인가?"

삼봉 "그러합니다."

농부 "무슨 죄인가? 옳고 그름을 돌아보지 않고 사리사욕만 채우다가 죄를 얻은 것인가? 권신세도에 빌붙어 구차한 모습으로 한 자리 얻었다가 하루아침에 형세가 가버려 결국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삼봉 "그런 게 아닙니다."

농부 "그럼, 표리부동한 자가 헛된 이름을 훔치고 종횡으로 결탁하면서 무사안일로 녹만 축내는 따위, 국가의 안위와 생민의 근심, 시정의 득실과 풍속의 미악(美惡) 등은 팽개친 채 보신 보가하는 행위, 충의지사가 바른 말을 하다가 화를 당하면 속으로 고소히 여기고 그를 비방하는 짓을 하다가 이리된 것인가?"

삼봉 "그것도 아닙니다."

농부 "아니면, 이리처럼 괴팍한 성질을 부리고, 아첨하는 자는 등용하고, 곧은 선비가 거스르면 성을 내며 임금의 작록 훔쳐 사사로운 은혜를 만들고, 국가의 형전(刑典)을 농단하다가 마침내 이러한 죄에 걸린 것인가?"

삼봉 "그것도 아닙니다."

농부 "그렇다면 그대의 죄목을 나는 알겠다. 그 힘의 부족은 헤아리지 않고 큰소리를 좋아하고, 그 시기의 불가함은 모르면서 바른말을 좋아하며,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옛사람을 사모하고 아래에 처하면서도 위를 거스른 것이 바로 죄를 얻은 원인이로다. 옛날 가의, 굴원, 한유, 관용봉처럼. 그대는 여러 금기를 범하였는데 겨우 귀양에만 처해진 것을 보면 국법이 얼마나 너그러운지 알겠다. 지금부터라도 각별히 조심하면 화를 면하게 될 것이니…"

삼봉 "은군자이십니다. 객관에 모시고 배우고자 합니다."

농부 "나는 밭을 갈아서 세금을 내고 남은 것으로 처자를 양육하니 그 밖의 일은 내 알바 아니오. 그대는 물러가시오 나를 어지럽히지 말고."

농부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물러나와 탄식하기를 '저 노인은 옛 은자, 장저?걸익 같은 사람(沮溺之流)이로구나', 하였다.'

정도전(1342∼1398)의 삼봉집에 실린 '답전보(答田父)'를 축약 가필한 것이다. 삼봉은 1360년(공민왕 9) 18세에 성균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이후 여러 요직을 거치며 신진사류로 승승장구했다. 공민왕의 개혁은 그가 시해 당하면서 실패했다. 집권한 권문세족은 친원배명(親元排明) 정책을 폈다. 삼봉은 당시 성균관 박사로 원나라 사신의 영접사로 임명된다. 원은 지는 해였고 명은 뜨는 해였다. 그는 친명을 주장하며 "원 사신의 목을 베겠다."고 격렬하게 맞서다가 1375년 결국 나주목 회진현에 유배된다. 이곳이 지금의 나주 다시면 운봉리 백동마을이다. 이 글은 유배지에서의 어느 날 농부를 만나 나눈 문답이다. 창작인지, 사실의 기록인지 알 수 없으나 이곳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농부의 물음은 세 가지다. 무능과 부정의 잡범인가, 배임수재의 부패형 비리인가, 국정농단의 권력형 비리인가? 촌로가 조정의 온갖 비리를 꿰뚫고 있다. 그것이 아니면, 제 힘도 모르고 때도 모르면서 공허한 정의만을 외치는 정치사상범 아니냐는 추궁이다. 삼봉은 이념의 문제로 괘씸죄를 받은 것이니 촌로의 지적은 정확하다.

이 글의 말미에 '저익지류'가 나온다. 공자와 자로가 초에서 채나라로 가는 도중에 밭을 가는 장저와 걸익에게 나루터를 묻는다. 둘은 "그런 정거장은 밭가는 우리보다 세상을 주유하는 너희가 더 잘 알거 아니냐?"면서 자로에게 "쿠당탕탕 물이 쏟아지는 것이 오늘날 형세인데 뉘라서 이를 바꾸겠나?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자를 따르느니, 차라리 세상을 피하는 우리와 함께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한다. 지독한 조롱이다. 이 말을 듣고는 공자 "날짐승, 들짐승과는 더불어 무리를 지을 수 없는 법. 내 사람의 무리가 아니고 또 뉘와 함께하랴!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 바꾸려 들지도 않았으리니"라고 했다. 논어 미자(微子)편의 대화다.

나주 정도전 유배지

여기서 유교와 도교가 충돌하고 있다. 춘추시대, 살육이 난무하는 야만의 시대에 제국의 지상과제는 부국강병이었다. 거기에 대고 인의예지를 논하면서 이 사람 저사람 피해 다니는 공자는 어리석다. 차라리 이 난세를 피해 무위자연 속에서 노니는 도교로 귀화하는 것이 어떠하냐는 주장이다. 공자는 너희 은둔의 삶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조수(鳥獸)와 더불어 어찌 무리를 짓겠는가, 아무리 형극의 길이라 하더라도 신음하는 백성을 떠나 홀로 무릉도원에 갈 수는 없는 법, 세상의 도가 땅에 떨어졌으니 그것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지, 세상에 이미 도가 있다면 나서지도 않았다는 반론이다.

삼봉은 그곳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하나는 현실이다. 밖으로는 왜구와 홍건적의 침략으로 전란에 시달렸고, 안으로는 구가세족의 횡포로 사회질서가 무너지는 고려 말기. 그가 현장에서 겪은 민중의 삶은 너무나도 피폐한 것이었으며, 피지배계급의 눈에 비친 지배계급의 모습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대안으로서의 이상이다. 저 촌로처럼 은자의 길을 갈 것인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민중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답전보의 끝 문장, '저익지류'에 이미 길은 나와 있다. 그는 2년간 나주에서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영주로 이배(移配)되었다. 삼봉은 9년의 긴 유배와 유랑을 마친 1383년 가을, 당시 함경도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찾아 함주로 간다. 거기서 질서정연한 군영을 마주하며 "이런 군대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한 대목이 용비어천가에 나온다. 역성혁명의 전주곡이었다.

개혁을 통해 수선할 수 있었던 고려의 시간은 지났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처럼 저 견고한 모순의 벽은 혁명의 망치질을 통해 온통 무너뜨리는 수밖에 없다. 유방의 장량에 비유되는 삼봉은 혁명가이자 조선건국의 설계자였다. 그는 혁명 이룬 뒤 토지개혁과 종교개혁, 군사개혁을 단행하면서 부패한 사회 각 분야에 새로운 질서를 정립했다. 그의 정치이상은 민본주의 관료지배 체제였다.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에는 물리적 힘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혁명을 긍정했고, 그것을 실현했다. 삼봉에 대해 도올 김용옥은 "세계 역사에서 링컨과 처칠 같은 위대한 정치가가 있지만,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정치가가 누구냐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정도전을 꼽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쑥쑥 자란 볏모들이 무성한 여름을 뒤덮고 있는 나주 백동마을 들녘. 이곳에서 혁명의 씨앗이 잉태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마치 압록강에서 회군하는 말발굽 소리, 혁명의 북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누군가 삼봉처럼 큰 뜻을 품은 이가 있다면, 저 저무는 들판에 서서 깊은 상념에 잠겨보아도 좋을 일이다. 글=이광이 시민전문기자·그림=김집중

글 : 이광이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그림 : 김집중

호는 정암(正巖)이다. 광주광역시 정책기획관 등 공직에서 30여년 일했다. 지금은 고봉 기대승선생 숭덕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강의도 한다. 고교시절부터 한국화를 시작하여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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