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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22권의 방대한 저술 남긴 농부 실학자 위백규

입력 2020.05.10. 13:14 수정 2020.05.27. 10:23 @김승용 eksy1221@naver.com
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장흥 장천재

여기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18세기 한 인물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풀고 들어가야 한다.

땀은 듣는 대로 듣고 볕은 쬘 대로 쬔다


청풍(淸風)에 옷깃 열고 긴 파람 흘리 불 제

어디서 길 가는 손님네 아는 듯이 머무는고

돌아가자 돌아가자 해 지거든 돌아가자

계변(溪邊)에 손발 씻고 호미 메고 돌아올 제

어디서 우배 초적(牛背草笛)이 함께 가자 재촉하는고


위백규의 시조 '농가(農歌)'이다. 9수의 연시조라 농가구장(九章)이라고 한다. 그 중 4장과 6장이다. 이른 아침 해가 뜨면 소를 몰고 들에 나가 김매고 소 뜯기고, 땀 흘리며 밭일을 하다가 점심때가 되어 보리밥 콩잎에 싸서 한 그릇 먹고, 낮잠 한 숨 늘어지게 잔다. 해 저물어 냇가에 손발 씻고, 피리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을 들녘에 패인 벼이삭을 보고는 슬며시 웃음 짓는다.

저녁밥 먹고, 술을 걸러 탁주도 한잔이 곁들이니 취한 것은 늙은이요 웃는 것은 아이로다. 동네사람 두루 둘러앉아 장구소리에 술을 한잔, 춤을 한번, 돌아가는데 누가 노래를 길게 하여 춤출 차례를 늘어지게 하느냐! 간추리면 그런 내용이다. 9장 춤출 차례가 늘어진다는 것은 노래방에서 자기차례를 기다리는데 꼭 두곡씩 하는 앞사람을 지적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눈부시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농가의 하루이며, 농촌의 한 해이고, 농부의 한 생이 담겨있다. 4장은 뙤약볕에 땀 흘리며 일하는데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손님처럼 머문다는 내용이다. 6장은 냇가에 손발 씻고 호미 메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우배초적은 소타고 가면서 부는 피리소리이다. 여기서 4장 '길가는 손님'은 누구인가? 2003년 수능 언어영역 시험문제다. 송순의 면앙정가와 이 농가가 지문으로 4문제 출제됐다. 주제의식이 맞는 것, 감상이 적절하지 않은 것, 시어의 설명을 묻는 것인데, 밑줄 그은 길 가는 손님이 그 중 하나다. 길 가는 손님, 그는 누구일까?


장천재


위백규(1727~1798)는 조선후기 문신이다. 호는 존재(存齋), 본관은 장흥이다. 지리산·월출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인 천관산 아래 대대로 살았다. 위문덕의 장남으로 어려서 총명했다고 한다. 10대에 문중 재실인 '장천재(長川齋)'에서 독학했다. 증조부 도움을 받아 여러 집들의 책을 빌려 읽었고, 학문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1750년(영조 26) 학행으로 향천(鄕薦)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 25세에 노론의 학자였던 윤봉구 문하에 들어 수학했다. 1766년까지 15년 동안 경서·의례·이기심성론 등을 두루 익혔다. 하지만 그는 과거시험에는 계속 떨어졌던 모양이다. 자식들은 커가는 데 가산은 궁핍하니, 39세에 진사를 끝으로 과거를 단념하고 방촌으로 돌아온다. 그는 사대부이면서 삽을 들고 직접 농사를 지었다. 그러면서 땅에서 배우며 시대의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학통은 이이, 송시열로 이어지는 노론계이나 조선후기 부패한 사회현실과 민중에 대한 착취를 목도하면서 강한 비판의식이 저술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는 50세 이후 강학에 몰두하면서 엄청난 저작을 쏟아낸다. '봉사', '정현신보', '만언봉사' 등 농촌사회의 총체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시폐론, '연년행' 연작 등 현실 비판적 한시, '환영지', '지제지' 등이 이때 나왔다.

존재의 개혁론은 첫째 향촌이 인사·재정을 직접 담당해야 한다는 것, 둘째 관리 수를 줄이고, 향촌이 세금을 자율로 부과징수 해야 한다는 것, 셋째 견실한 향촌 방위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지방자치제보다 앞서 있다. 선생은 '정현신보'에서 '우리나라 전답은 몹시 좁은데도 소유제한이 없어 부자는 더 갖으며 부유할수록 사치하고 가난할수록 더욱 곤궁해지는 형세'라면서 '부자에게 소유를 제한하고 세금을 제대로 걷을 것이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잡다한 세금을 부과하지 말고 자력으로 살 수 있게 기회를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21세기 양극화를 논하는 진보정당의 선거공약집을 읽는 듯하다.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등장한 것이 1948년 정부수립 이후이니, 그는 시대를 한참 앞선 진보적 개혁론자였다.

천관산 중턱 맑은 계곡이 흐르는 언덕 위에 장천재가 있다. 본래 암자였던 것을 1659년 재실로 창건한 것이다. 두 차례 개수를 거쳐 1873년 지금의 모습으로 중수했다. 집 좌우에 날개 1칸씩을 내어 누각을 달았다. H자형 평면에 우물마루를 깔고 가운데 3칸은 방을 넣었다. 앞에서는 팔작지붕이고, 뒤에서는 맞배지붕인 것이 특징이다. 전남도 무형문화재다. 현판에 적힌 시문으로 보아 유림들이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존재 선생이 여기서 수학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69세 만년에 이르러 정조의 부름을 받고 '만언봉사'를 지어 올린다. 개혁과 정치에 관한 6가지 정책을 건의한 글이다. 옥과 현감을 제수 받아 이상정치를 펴보려 했으나 기성 관료들과 마찰이 잦았다. 중풍을 얻어 뜻을 접고, 귀향하여 1년여 만에 숨을 거둔다. 향년 71세.

위백규는 경세론 외에도 천문, 지리, 복서, 의학에 두루 달통했다. 순창의 신경준, 고창의 황윤석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천재실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방대한 저술문집 22권의 '존재집'이 그것을 말해준다. 다산보다 30여년 일찍 태어났고 두 사람의 교류는 없었지만, 그에게서 다산의 향취가 난다. 만일 양계장을 하거든 닭들의 생태를 면밀히 보고 기록하여 책으로 남겨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가르쳤던 다산.

그처럼 일촌일각을 방일하지 않고 자신에게 엄격했던 선생의 삶의 자세가 다산과 다르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불후의 대작을 남긴다. 존재는 평생 관직에 기웃거리지 않고 저 궁벽한 천관산자락에서 가난한 학자이자 농부이며, 시인으로 한 생을 살았다. 그가 남긴 시와 고전 산문을 읽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길 가는 손님은 누구일까? 수능 답지에서는 '현실과 거리를 두고 있는 탈속적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수능다운 답이다. 뙤약볕 아래 밭일을 하는데 한줄기 바람이 옷깃에 머문다, 길 가던 손님이 아는 사람처럼 다가오듯이. 저기 한사람이 걸어오는 데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 같다.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데도 아는 것 같다. 그러면 둘이 된다. 이 대목은 '인(仁)'이 무엇이냐는 번지의 물음에 공자가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인(仁)은 사람(人)이 둘(二)이라는 글자다. 길 가던 손님, 그가 누구이던지 그는 위백규 선생이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농가를 읽으면서, 방구들에 서서히 퍼지는 온기처럼 시인으로서 그의 체온이 전해온다. 글=이광이 시민전문기자·그림=김집중


글 : 이광이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그림 : 김집중 

호는 정암(正巖)이다. 광주광역시 정책기획관 등 공직에서 30여년 일했다. 지금은 고봉 기대승선생 숭덕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강의도 한다. 고교시절부터 한국화를 시작하여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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