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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광주'로 만들자

수영대회 구호에 담긴 광주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입력 2020.07.06. 19:33 수정 2020.07.06. 19:39
이제는 스포츠 관광도시 '스토리 광주'로 만들자
(3)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상>상징물-슬로건

"'평화의 물결 속으로(Dive Into Peace)'는 광주 정신(민주·인권·평화)과 수영대회를 상징하는 물결의 완벽한 조화를 의미합니다.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입니다. 부다페스트대회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겠습니다. 경기장과 연계한 주요 관광지·랜드마크 등 광주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보여줄 계획입니다."

2017년 7월 26일 오후 4시30분쯤(현지시각) 부다페스트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주경기장인 두나 아레나(Duna Arena) 기자회견장. 광주대회 공식 슬로건과 엠블럼, 마스코트 수리·달이가 첫 선을 보였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한 공식 데뷔전인 셈. 폐막을 사흘 앞두고 조영택 사무총장이 회견의 전면에 나섰다. 영국·이탈리아·러시아·미국·중국·일본 등 외신기자 150여명에게 차기 개최도시(광주광역시)와 경기장 등 대회 준비 상황 등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다. 상징물 개발에 나선 지 7개월 여 만이었다. 국제수영연맹(FINA) 훌리오 마글리오네 회장과 코넬 마르쿨레스쿠 사무총장도 함께했다.


◆"나 다시 돌아갈래!"

상징물은 대회를 규정한다. 슬로건과 엠블럼·마스코트만 봐도 개최도시의 브랜드와 대회의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는 이유다. 그 만큼 대회 상징물을 만들 땐 많은 공력이 든다. 우선, 개최도시의 과거·현재의 이미지·정체성과 미래의 방향성을 담아야 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이미지는 모든 사람이 다르기 마련이다. 공동의 이미지를 하나로 맞추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5개월 전으로 거슬러 간다. 공식 슬로건·엠블럼·마스코트 수리달이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 지 그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출근은 그해 2월부터였다. 홍보마케팅 팀장으로서 맡은 첫 업무는 대회 상징물을 만드는 작업. 당시 김원 주임(현 광주시청 5·18 선양과 주무관)으로부터 관련 자료와 함께 진행 상황을 들었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셉과 키워드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도시 이미지·브랜드에 대한 생각이 각기 다른 탓이다. "대학과 실무 분야 전문가분들이 토론하고 있지만, 도시·대회 지향점과 관련한 공동의 가치를 뽑아내는 게 무척 어렵네요". 근심이 담긴 그의 말이었다. 담당자로서 고민이 묻어났다.

개인적으론 큰 행운이자 영광이었다. 세계수영대회와 같은 국제스포츠 이벤트의 상징물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것도 실무팀장으로서…. 광주의 과거·현재·미래를 고민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투 트랙(two track)으로 진행됐다. 우선 브랜드 관련 용역사가 선정됐다. 상징물 개발과 관련한 모든 실무적 업무를 맡았다. 철학·이념적 토대를 와 근거를 제공해 줄 전문적 자문·심의 기구도 꾸려졌다. 주제제정 자문위원회와 디자인 전문위원회(마스코트·엠블럼)다. 슬로건은 주제제정위원회에서 자문했다. 대회 비전과 이념을 정립하기 위해서다. 이를 바탕으로 주제와 메시지를 도출했다. 문화·역사·도시브랜드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 7명을 위촉한 터였다.


◆2019년 2월 28일

대회 상징물 제작은 홍보·마케팅의 출발점이다. 오후 2시 '시각상징물 개발사업 2차 중간보고'와 '주제·디자인 전문위원회 회의'가 4층 회의실에서 잇따라 열렸다. 격론이 벌어졌다. 도시에 대한 규정은 살아온 삶 만큼 달랐다. 컨셉·키워드는 크게 4가지 테마에서 추출됐다. ▲도시 이름과 이미지 ▲랜드마크 ▲도시의 지향점(미래 산업 등) ▲수영대회 성격(물 등 관련된 환경)이 그 것이다.

우선 도시 이름. '빛고을'에서 '빛'이란 키워드가 나왔다. 광산업과 인공지능(AI), 문화·체육산업으로 확장됐다. 도시 이미지·정체성도 중요했다. 민주·인권·평화도시. A위원은 "빛에 집착하지 말고, 거대담론적으로 생각하자"며 "시대가 화합을 요구한다. '화합의 물결' 같은 슬로건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유도 논의됐다. 개념에 대한 시각차가 있었다. '방임'과 반대되는 개념, '자유 시장경제'에서의 자유 개념이 맞섰다. 자연스레 영어 단어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유를 뜻하는 영어의 'Liberty'냐, 'Freedom'이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예향(藝鄕)·의향(義鄕)·미향(味鄕) 등 3향(鄕)의 도시도 주요 고려 대상이었다. 랜드마크도 들여다봤다. 무등산·영산강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이 대상이었다. 또 다른 B위원은 "광주의 가치를 문화와 역사에 뒀는데, 수영대회는 광주 만의 가치가 아니다"며 "처음부터 기초 설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수영과 관련한 근원적 질문도 나왔다. 물이 지닌 속성과 특성. 즉 생명의 원천이자 근원이란 점에 착안했다. 전 세계에 친환경 도시 이미지를 부각할 수도 있다. 청정의 무등산('품결')과 수질이 되살아난 영산강('물결')의 이미지. 이 같은 개념을 수영대회와 연계시켜 응축하기로 했다. 마스코트인 수리와 달이와 엠블럼의 물결이 탄생한 배경이다.

지난한 과정이었다. 슬로건 후보안은 모두 15개. ▲광주 : '빛나는 물결' '빛을 가르다' ▲수영 : '힘찬 물결, 벅찬 숨결' '빛의 땀 방울' ▲미래 : '빛나는 꿈이 펼쳐지다' '열정이 흐르다 세계를 비추다' ▲화합 : '물과 빛이 하나되어' '빛의 어울림, 화합의 이끌림' ▲감동 : '빛의 끌림, 열정의 울림, 도전의 떨림' '빛나는 함성, 위대한 도전' 등이었다. 2주 전 열린 회의에선 추상적·보편적인 표현을 뺀 압축미와 자유·치유·여유 등의 컨셉, 수영과의 연계성 등이 강조됐다.

개인적으론 '빛의 품으로'가 맘에 들었다. '빛'고을 광주, 광산업, 어머니 산인 무등산의 넉넉한 품…. 결국 '삼인삼색'. ▲도시 정체성에 대한 규정 ▲도시 브랜드 등 미래 방향 설정 ▲가치에 대한 우선 순위 : 개최 도시인지, 수영대회 인지 ▲시대 상황 및 정서적 공감대(2016년 미 대선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한반도 전쟁 위기 심화 등 미국·유럽의 보수화 및 신자유주의 가속화) 등이 핵심이었다. 역시 쉽지 않았다.


◆3월 28일과 4월 11일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 나갔다. 설문조사에 앞서 후보안을 6개로 추렸다. '빛나는 물결' '새로운 시작, 지금 여기' '도전의 어울림' '차이를 넘어' '빛의 품으로' '힘찬 물결, 벅찬 감동' 등이었다. 온라인으로 전 국민 500명, 충장로·전남대 후문 등 광주시민 210명의 의견을 들었다. 또한 조직위와 시청·시의회·언론사 등 온·오프라인 여론 수렴을 거쳤다. 2가지 안으로 압축됐다. '힘찬 물결, 벅찬 감동', '빛나는 물결'. '힘찬∼, 벅찬∼'은 "응원 구호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광주 정체성·브랜드와도 무관했다. 너무 직관적·추상적이란 지적도 신경쓰였다. 대회의 핵심 가치를 구현하고, 구체화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문순태 위원장의 친필 문구. 그는 광주대회 슬로건으로 2개의 안을 추천했다. 조직위 제공

◆5월 2일

주제제정자문위원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문순태(소설가) 위원장께 추천을 요청드렸다. 기존 안을 놓고 설왕설래하던 터였다. '여러 절차를 거쳐 만들어서 일까'. "밋밋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조직위의 고민도 그 만큼 커졌다. 전문가의 통찰력있고 깊이 있는 메시지가 필요했다. 위원회 회의 주재 하면서 모든 논의 과정을 지켜보셨다.

슬로건 탄생의 전환점이 됐다. '평화의 물결속으로' '평화와 화합의 물결'. 두 가지 안을 추천해 주셨다. 이유는 크게 3가지. 우선 도시 정체성. 광주는 민주·인권·평화를 지향하는 도시다. 둘째, 전쟁의 반대 개념인 평화는 광주가 지향하는 브랜드와도 일맥 상통했다.

마지막으론 시대적 상황. '북한 선수단 참가와 남북관계 개선을 겨냥한 명분 쌓기용'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광주는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다. 5·18민주화운동 덕분에 민주와 인권은 잘 알려진 가치가 됐다. 남북 관계 뿐만 아니라 유럽이 보수화 되는 등 전 세계가 어렵다. 평화도시 광주에서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화두로 던져보자". 당시 문 위원장의 워딩이었다. 듣는 순간, 번쩍하는 느낌이 왔다. 무릎을 쳤다. 공감대가 형성됐다.

상징물은 브랜드 마케팅의 첫 단추다. 개최 도시·국제스포츠이벤트 성격에 대한 대한 지향점을 전 세계에 알려준다. 대회 자체 만을 부각할 수 없는 이유다. 통합된 이미지를 하나로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개최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는 구슬을 하나로 꿰어야 한다. 과거 도시 이미지·정체성이 바탕이 된다. 도시의 랜드마크와 미래 산업적 측면까지 고려된다.

확장성과 연계성도 고려대상이다. 전 세계 수영인들의 공동 가치는 물론 시대 상황에 맞는 정서적인 공감이 전제돼야 한다. 공감은 개최도시, 스포츠 이벤트와의 연계성이 담보돼야 한다. 여기에 대회 개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미래지향적 가치 등도 함께 녹여져야 한다. 도시에 따라 슬로건이 다른 이유다.

다음은 평창올림픽 슬로건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 등을 만든 민은정의 저서 '브랜드;짓다'의 한 대목이다. "올림픽은 스포츠의 형식을 띠지만, 영향력은 스포츠를 넘어선다. 어디서 열리든 올림픽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는 시대의 정신과 정서, 유치 도시의 역량과 철학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올림픽 공식 슬로건이다."

유지호기자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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