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1(토)
현재기온 7.6°c대기 좋음풍속 0.7m/s습도 86%
'스토리 광주'로 만들자

수영장 오가는 물길따라 세계문화유산 고스란히 눈에 담겼다

입력 2020.06.03. 16:03 수정 2020.06.08. 18:56
이제는 스포츠 관광도시 '스토리 광주'로 만들자
② 부다페스트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중>경기장스토리-behind-인상적 장면들
다뉴브 강에서 바라 본 부다왕궁 모습.

"여기(부다페스트) 카페·레스토랑 TV 모니터 마다 수구(Water Polo) 경기만 중계하던데."

"헝가리에서 수구는 우리(한국)의 야구·축구 같은 국민스포츠 인 듯…." "수구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제17회 부다페스트대회가 막바지로 치닫던 2017년 7월 27일 오후 7시쯤(현지 시각) 다뉴브강 셔들보트 안. 개막 이후 보름째. 주경기장인 두나 아레나 마켓 스트리트에서 마그리트 섬(Margaret Island) 알프레드 허요시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 공식 홍보영상에 '세계 수구의 진정한 메카'로 소개되는 곳이다. 시내는 축제 분위기였다. 헝가리의 준결승 경기가 있는 날이기 때문. 광주MBC 취재팀의 현장 촬영 지원 등을 위해 동행했다. 피의 복수였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전장(戰場)이 영웅광장·국회의사당에서 멜버른(올림픽)으로 옮겨졌다. 헝가리는 도발했다. 흥분한 소련 선수가 주먹을 썼다. 헝가리는 경기장에서도 피를 봤다.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물속의 혈투'는 마자르족을 하나로 묶었다.

대회 기간 운영된 다뉴브강 셔틀보트. 부다페스트 조직위 제공

'물의 도시' 부다페스트의 브랜드·도시관광 컨셉은 물이었다. 슬로건은 대회 성격을 규정한다. 개최도시와 수영대회의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다. 대회 슬로건은 'Water Wonder Welcome'. 부다페스트가 세계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첫 번째 가치와 메시지는 '물'이었다. 핵심 키워드는 '수송(水送)'과 '성수(聖水)' 등 수송(輸送) 시스템과 상징물로 구현됐다.

셔틀보트는 신의 한 수. 교통체증 없는 출·퇴근에 도시의 아름다움은 덤이었다. 미국의 유명 여행 웹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방문객이 선호하는 관광명소 560곳 중 다뉴브강과 국회의사당·어부의 요새·마그리트 섬은 1∼7위권. 다뉴브의 랜드마크에 경기장을 만든 뒤 보트로 묶었다. 남부대국제수영장 운영을 총괄하는 김옥환 본부장은 "부다페스트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했다. 셔틀보트는 개막식장(부다왕궁·세체니 다리 등)∼하이다이빙(의사당)∼수구(마그리트 섬)∼경영·다이빙·마켓 스트리트(두나 아레나) 경기장 간 왕복 14㎞ 구간을 20분 마다 부지런히 오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다뉴브 수로(水路)는 성공했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그냥 노출됐다. 부다페스트 수송 시스템은 크게 2가지. 그러나 핵심은 다뉴브였다. 45명에서 최대 60명까지 탈 수 있는 셔틀보트 17대가 동원됐다. 소형크루즈는 30분이면 모든 경기장(편도)을 돌았다.

주경기장인 두나 아레나에 설치된 성수.

물의 상징은 각인됐다. 성수(聖水)는 도시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올림픽 때면 등장했던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聖火)는 다뉴브의 물이 대신했다. 7월 14일 밤 개막식은 상징적 장면. 헝가리 수영 영웅은 성수봉에 담긴 물을 다뉴브강에 부었다. 물의 순환. 1988년∼1996년 대회까지 여자 배영 200m에서 3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딴 크리스티나 에게르세기. 야경에 더한 개막 공연은 아름답고 화려했다. 장소마케팅을 극대화 한 그의 모습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성수는 주경기장으로 옮겨져 대회 기간 내내 '빛'을 발했다.

"광주에서 왔나" "그렇다. 광주를 아나"

셔틀보트에서 수구 이야기가 한창 일 때, 건장한 체격의 한 남성이 다가와 대뜸 물었다.

반가웠다. '홍보관의 영향인가'. 마켓 스트리트 내 10여 개의 부스 중 광주 홍보관은 단연 돋보였다. 보름 동안 총 1만 여명(하루 평균 700여 명)이 왔다. 컨테이너 2개(30여㎡ )를 붙여 'Dive into Gwangju(개최도시)' 'Dive into Culture(아시아문화중심도시)' 등의 테마관을 만들었다. 광주 슬로건인 '평화의 물결 속으로(Dive into Peace)'를 빗댔다.

준비는 그 해 4월부터 들어갔다. 대회 준비상황과 광주의 볼거리·먹을거리·교통·숙박 등 다양한 정보를 담은 홍보영상과 리플릿·마스코트인 수리달이 기념품 등을 만들었다. 한글로 작업 한 뒤 수 차례 영어 번역과 감수, 자문 등을 거쳤다. 미디어아트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한복체험 등을 곁들였다. 방탄소년단(BTS) 등 당시 유럽의 '한류 열풍'도 한 몫 거들었다. 홍보관을 찾은 두짓(Duzit·체코)씨는 "유럽에서 K-pop의 인기는 단연 최고"라며 "부다페스트에서 말로만 들었던 한국을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며 미소지었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 자신을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의 전담코치라고 소개했다. 박 선수와 함께 호주에서 넉 달 동안 훈련하다 부다페스트로 온 팀 레인(호주) 코치였다. '박태환은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훈련에 구슬땀을 흘렸다'고 알려진 터였다. '이런 우연이…'. 광주대회 1호 홍보대사인 박태환 이름이 주는 친근함이 근사했다.

헝가리 수영 영웅이 성수봉에 담긴 물을 다뉴브강에 붓고 있다. 광주MBC 화면 캡처.

-레인 코치 "광주에 호텔이 없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무슨 소리인가, 특급 호텔이 2개나 있는데"

-레인 코치 "광주엔 호텔이 없다고들 한다. 주변에서 그렇게 말한다"

-"……"

짐작은 갔다. 부다페스트에선 호텔이 스포츠 외교 및 교류의 장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호텔 40개(숙소 10만 개)를 확보했다. 소피텔·켐핀스키·리츠칼튼·포시즌스·코린시아 등 최고급 호텔 체인 브랜드에서부터 4·3성급까지 다양했다. 본부호텔은 인터컨티넨탈·힐튼호텔. 참가등록에서부터 FINA 뷰로회의·총회, FINA·IOC 미팅 등 공식행사와 대륙별·종목별 위원회가 이 곳에서 모두 열렸다. 700∼800명이 한 자리에 모여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동영상을 보며 대규모 회의를 할 수 있는 장소까지 갖췄다. 부러웠다. 사실 호텔은 잠 자고 아침 식사하는 곳 정도로만 이해했었다.

헝가리는 친숙했다. 한국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성을 앞에, 이름을 뒤에 쓴다. 주소와 날짜도 표기법이 같다. 식성도 비슷하다. 육개장 맛이 나는 '굴라시'에 고춧가루와 같은 파프리카 가루를 넣어서 먹는다. 굴라쉬는 헝가리의 대표 음식. 소고기와 양파, 고추, 파프리카 등을 넣고 만든 매운 수프다. 맛이 얼큰해 한국인의 입 맛에도 잘 맞는다. 헝가리인의 원류인 마자르족은 7세기경 한반도 북부에 거주했던 퉁구스계 말갈족으로 알려졌다.

부다페스트의 인구는 174만여 명. 광주와 비슷하다. '2년 뒤 세계인에게 비춰질 광주는 어떤 모습일까'. 많은 아이디어와 고민, 숙제를 안겨준 부다페스트의 밤은 깊어만 갔다. 


민주화의 역사 광주와 닮은꼴

부다페스트는 아픈 역사를 지녔다. 1956년 헝가리혁명 당시, 구 소련군 철수와 헝가리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학생·시민 등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소련은 탱크 1천대와 군사 15만 명을 투입해 무력 진압했다. 그 해 10월 23일~11월 10일까지 2천500여 명이 숨지고, 1만3천여 명이 다쳤다. 옛 시인은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고 했다. 혁명 당시 국회의사당 앞 코슈트 광장.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의 배경이 됐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재난·재해 등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 탐방). 세계문화유산인 영웅광장은 부다페스트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 혁명 당시의 상흔이 남았다. 헝가리 국민에게 외세 침략과 식민 지배에도 굴복하지 않고 민족의 정기를 이어온 '성지'로 통한다. 광주 5·18 민주광장과 금남로 등과 닮았다. 인근 시민공원인 바로시리게트는 울창한 숲이 조성돼 관광객으로 늘 붐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흉상이 있다. 안익태 선생은 1938~1941년 부다페스트에 있는 프란츠 리스트 음악예술대학에서 수학하며 당시 헝가리 민요의 아버지로 불리는 음악가 졸탄 코다이를 사사했다.

유지호기자 hwaone@srb.co.kr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srb.co.kr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