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섭 지음/ 자연과사람/ 288쪽
흙수저 상황의 젊은이들은 상황 자체를 탓하다가 종내에는 자신을 탓하게 된다. 자신의 신체적 특성, 게으른 습성, 타고난 용모, 뜻하지 않은 실수나 무능 등을 탓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잔하는 술자리에서 그 탓의 방향이 다른 데로 옮겨 간다. 그때부터는 자신의 탓이라는 궁지에서 탈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애꿎게도 '조상'이 등장한다.
돌아가신 조상은 반박도 하지 못한다. 살아 있는 조상도 마찬가지이다. 그 무엇도 물려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입을 다무는 것이다. 조상들은 다시 살아나 후세의 푸념을 듣더라도 입을 다물 것이다. 자신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없었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말이다.
그러나 본래 이 '탓'을 하는 경우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거나, 자신의 불행이나 미흡함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 비겁함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최근 나온 정경섭씨의 '대물림과 조상탓'은 평범한 집안의 역사와 보통사람이 겪은 에피소드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공감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쓰여졌다.
저자는 아담과 우리 사이의 수많은 선조가 그 유전자들을 전달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 유전자들은 모두가 성질을 달리하면서 살아남을 능력이 있는 유전자만 남아 이어진다.
내 자식에게는 내가 가진 유전자 뿐 아니라 아내 그리고 대를 이은 선조들의 유전자가 어떤 것은 심하게 혹은 약하게 전달된다.
그는 무엇보다 삶에 발전을 이루려면 조상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상의 인물과 행적을 더듬어 찾다보면 의외의 것을 알게 되고 내가 거기서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먼 과거로부터 전해 오는 유전자를 전해 준 조상들이 노력 없이는 영원히 비밀에 묻혀 버릴 수도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경우 옛 것을 알아야 새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자기 조상을 아는 것은 옛 것을 아는 것의 일부이며 자기 조상을 아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이같은 견해 속에서 우라 조상과 뿌리에 주목했다.
우리의 조상인 셈의 후손들은 바이칼호 쪽으로 퍼져 12부족(12한국)으로 나누어져 살다가 그곳에서 해 뜨는 동쪽으로 나아갔다.
바이칼호는 우랄과 파미를 넘기 전 유전자 저장소처럼 몰려 살았던 핵심 공간이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비롯, 샤머니즘의 원형, 서낭당, 탯줄을 문지방에 묻는 관습, 강강술래 등이 이같은 주거지 이동과 유전자 전달에서 비롯됐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가진 유전자는 수천년 동안 삶의 원형을 이루게 됐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후손들이 자신이 원하는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삶을 살고 직업을 선택하는 유형으로 현실화됐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나아가 이 시대 청년들이 어려움과 유혹을 이겨내고 책임의식과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믿음으로 삶을 살 것을 주문했다.
정경섭씨는 경북 경주 출생으로 중동고와 성균관대(경제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 동안 금융권에서 일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 적막과 상처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 · 음모론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의 모습
- · 소설처럼 쉽게 이해하는 우리 역사
- · '문정희 시인의 문학과 인생' 대담 특집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