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약속 통해 행복 형상화
고희를 넘긴 할머니 작가가 장편소설을 펴냈다.
예순의 문턱에서 늦깎이 작가로 등단한 박인순 작가가 장편소설 '그 남자 침묵에 신의 눈물이'(지식과감성刊)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이진호는 금남로 2가 K은행지점 직원이다. 직장동료 김미진과 열흘간 대중교통 마비로 사직공원 길로 퇴근 하면서 동료애가 사랑으로 이어진다. 퇴근 방향이 같은 주인공, 이진호는 직장동료인 미진을 죽도록 사랑했지만 자식의 아버지를 선택하고 그 사랑을 비 갠 뒤, 우산 접듯 접어버린다.
가족에게 못해줬다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그건 안 돼, 하지마'란 말을 하지 않고 남편과 아버지와 직장인으로 책임과 사랑의 도리를 실천한다. 은행지점장 퇴직과 동시에 남은 여생은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고 말하고 모든 재산은 아내 앞으로 남긴다. 그는 합의이혼서류와 퇴직금으로 인생 후반부를 준비한다.
그는 남의 아내가 됐건 몸을 파는 창녀가 되었더라도 반드시 미진을 되찾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수녀가 된 그를 찾기 위해 한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신'의 기준으로 지켜온 사랑이기에 악이 깃들 것이 없다며, 수녀를 자기 여자이니 데리고 가겠노라며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맞선다.
가족들은 20년 전 사랑을 접고 가정을 택한 남자를 잊고 종신서원의 수녀와 연락 한 번 못한 채 만난 사실도 없이 가정을 지켜준 남편과 아버지의 진실과 마주한다.
아내는 이혼을 거절한 명분조차도 없이 완벽하게 살아준 남편을 자식들과 제2의 인생 존엄성과 행복을 빌어주기로 한다. 이기심과 편견 없는 아름다운 이별에 아버지가 아닌 한 남성의 침묵 속에 묻어둔 사랑은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시작도 사랑이고 책임과 의무이며 그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가 행복이다. 작가는 인간으로써 자신의'자아'찾아가는 용기 있는 삶의 모습을 자신만의 서사로 그려냈다.
박인순 작가는 "온갖 시련에도 문학이 유일한 삶에 의지 처였고 고전인문학과 다양한 독서와 메모하는 습관이 나의 스승이었다"며 "투잡을 하면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고.4년의 각고 끝에 첫 장편소설을 내게 됐는데 인간다운 책임과 약속이 지켜지는 가치가 그리운 세상이기에 자신 있게 공감대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인순 작가는 49년 나주에서 태어나 '수필문학'과 '문학예술 시'를 통해 등단, 시와 수필, 소설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광주문협 이사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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