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역사 유물 유적 학술연구 결합
마한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열매 주목
마한은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광주·전남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에 크고 굵직한 역사를 남겼다.
마한은 변한과 진한의 모태가 됐고 마한 사람이 두 나라의 왕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마한은 4세기 후반 백제에 병합됐다는 이병도의 주장이 주류 사학계의 정설로 굳어지면서 역사적 의미와 위상이 가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나온 박해현 교수의 '새로 쓰는 마한사'(국학자료원刊)는 800년이 넘는 마한사가 한국 고대사의 원류이자 본류임을 구체적 실증과 유물을 통해 밝혀냈다는 점에서 출간 의미가 크다.
그는 지난 2017년 1월부터 무등일보의 지면을 통해 쓴 '박해현의 새로 쓰는 전라도 고대사' 등 원고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이번 저술을 집필했다.
마한의 중심지인 영산강 유역에는 천년고도 경주의 대릉원(大陵園), 가야의 고분군을 능가하는 둘레 50m가 넘는 수십 기의 대형 고분군, 금동관, 금동신발, 대형 옹관, 엄청난 양의 구슬 등이 확인되고 있어 강력한 왕국의 존재를 웅변하고 있다. 마한의 특징을 설명하는 중국 기록의 사례들이 영산강 유역 유물에서 입증되고 있다. 영산강 유역이 곧 마한의 중심지이자 마한 문화의 시발점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는 800년 넘는 마한 역사를 '마한 르네상스'라고 명명했다.
박 교수는 학부 2학년 때 김두진 교수의 지도로 매일 '삼국유사' 원전 강독을 시작으로 고대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이후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마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가 고고학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한계와 역사학의 영역에서 이병도의 주장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 자신만의 시각으로 관련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마한이 영산강을 중심으로 중국과 왜, 가야 등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문화 교류 중심지로 발전한 점에 주목, '영산 지중해'라는 용어로 영산강 유역의 마한사를 규명해가고 있다.
'새로 쓰는 마한사'는 수백 편의 발굴 보고서와 단편적인 문헌 기록을 엮어 마한 역사를 새롭게 구성했다.
그는 특히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와 마한사에 대한 중요성 언급 이후 지난해 5월 '역사문화권 정비에 관한 특별법'에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에 마한을 포함시켜 마한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법적 수단 마련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사라진 왕국 마한의 흔적과 새로운 연구 방법, 마한 남부 연맹 왕국의 실상과 문화, 백제와의 관계, 후대에 계승한 마한의 정체성 등을 통해 마한의 역사적 의미와 입지를 자신만의 견해로 제시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마한은 '한국 고대사의 원형'이라고 규정했다.
마한 54국 가운데 '영산 지중해' 마한 연맹 왕국이 '마한 르네상스' 문명을 창조했고 나주 복암리 아파트형 고분과 '옥야리 방대형 고분', 신창동 유적의 '비단' 등 영산강 유역의 수많은 유적·유물들로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백제와의 관계 속에서도 강고한 마한 정체의식은 후백제 견훤의 마한 전통 계승 강조에서도 엿볼 수 있듯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역설했다.
김두진 국민대 명예교수는 "마한에 대한 연구가 단편적 몇 편의 논문에 그친 점에 비춰봐도 박해현 교수의 이번 저술은 마한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이자 열매"라며 "그의 연구는 한국 고대사의 원형을 밝히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박해현 교수는 보성 출생으로 전남대 사범대 역사교육과 및 동 대학원(문학박사)를 졸업하고 한국교육개발원 학교평가위원을 거쳐 현재 초당대와 세종사이버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전남도 마한문화권 개발자문위원과 마한역사문화연구회 마한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신라중대정치사연구' '영암의병사연구' 등이 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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