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운동부터 활약 33인 동문 다뤄
황광우 작가 3년 유족 사료 바탕 저술
30일 광주서중·일고 100년 기념식 개최
격동의 역사 속에서 등불을 밝힌 주체는 청년이었다. 일제암흑기에도, 군부독재시설에도 그랬다.
이들이 있었기에 독립과 민주화가 가능했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도 청년들의 희생과 헌신의 결과물이다.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최근 발간한 '무등의 빛'(심미안刊)은 광주학생독립운동부터 현재까지 독립과 민주를 위해 젊음을 바친 33명 동문들의 삶과 행적을 다뤘다는 점에서 출간의미가 지대하다.
책의 편찬과 저술은 한신원(43회) 광주서중·일고 100년사 편찬위원장 겸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간사와 황광우(52회) 작가가, 집필은 황 작가 주도로 이뤄졌다.
책은 제1부 '독립의 제단에 청춘을 바치다'를 주제로 송홍·최상현·왕재일 등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들의 업적을 살폈다.
이어 제2부에서는 김남주·나병식·윤한봉·김용근·박현채·김태홍씨 등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동문들의 행적에 주목했다.
맨앞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송홍 선생을 다뤘다. 그의 흉상은 광주일고 교정에 자리해 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조직적 구성을 맡은 성진회와 독서회에 참여한 왕재일과 장재성, 최규창, 정우채, 김상환, 김보섭 등이 송홍 선생의 제자들이었다.
그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광주독립운동의 후원자인 최상현은 문순태 소설 '타오르는 강'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20년대 광주에서 펼쳐진 민족운동의 요람이었던 흥학관에서 청년들을 규합했고 광주학생운동의 주역 중 한사람인 왕재일도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했다.
'흥학관'은 1970년대 녹두서점과 현대문화연구소로 명맥이 이어져 민주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3회 왕재일은 독립투사로서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는 성진회를 조직해 일찍이 항일투쟁 선봉에 섰고 옥중에 갇혀 고문으로 한많은 삶을 마감했다.
같은 3회 졸업생인 장재성은 운동가이자 독서가, 실천가로 불렸다. 그는 1929년 6월 광주고보 독서회를 결성해 광주역 일원에서 학생운동을 펼치는 등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한몸을 바쳤다.
동문 청년들의 희생은 군부독재시기인 1970-80년대에도 이어졌다.
유신 최초의 저항시인인 42회 졸업생 김남주 시인이 대표적인 인사로 꼽힌다. 그는 지하신문 '함성'지를 제작 배포하며 유신체제에 도전한 최초의 저항인사로 평가된다.
'민청학련 호남책'이었던 41회 졸업생은 윤한봉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역이다. 그는 지난 93년 망명 생활을 마감하고 조국에 돌아왔을 때 "퇴비처럼 짐꾼처럼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제26회 졸업생인 박현채는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이다. 그는 64년 제1차 인혁당 사건 구속을 시작으로 숱한 옥고를 치렀고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35회 졸업생인 김태홍씨는 80년 기자협회가 민주화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기자협회장직에 출마한 언론인이다.
그는 보도지침은 우리가 낸다며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발족하는 등 평생 민주언론운동을 펼쳤고 계속된 고문과 옥고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생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고 광주 북구청장을 역임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책은 의향 광주를 빛낸 세 인물로 호남창의회맹소 영주인 기삼연,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인 윤상원을 꼽았다.
황광우 작가는 책 집필을 위해 지난 3년 동안 유족들 인터뷰와 각종 논문과 사료 등을 취재해 책을 저술했다.
김상곤 광주서중·일고 100년 기념사업회장은 "독립의 제단에 청춘을 바친 분들과 민주 제단에 청춘을 바친 삶을 함께 담았다"며 "학생탑을 보고 자란 후배들이 자랑스런 민주의 역사를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광우 작가는 "청년들은 이땅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바쳐 역사의 등불을 밝혔다"며 "이들의 땀과 눈물, 희생으로 우리 역사는 풍성해졌고 후손들은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서중·일고는 오는 30일 오전 10시30분 교내 강당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갖고 170명 동문들에 대한 명예졸업장 수여 후 낮12시 '장재성 흉상 제막식','동문 독립유공자' 2차 서훈요청서를 국가보훈처에 전달할 계획이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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