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라즈 파델·제이슨 무어 지음/ 북돋움/ 1만8천원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구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자본주의다.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아념적 기반으로 생겨난 자본주의는 600년 동안 국제사회의 작동원리로 자리해 왔다.
최근 나온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젠더 이슈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이 추천한 담대한 역사서이자 도발적인 사회과학서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18세기 산업혁명의 영국이 아니라 15세기 대서양의 한 섬에서 시작됐다는 관점에서 유럽과 신대륙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자연과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이 일곱 가지 가치를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거래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오랜 전략이었고 그 작동의 원리를 각 장에서 파헤치고 있다.
저자들의 메시지는 '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서 작동해 왔다'로 규정했다.
이들은 극단적 불평등과 금융 불안 등 같은 현재 위기가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비로소 우리에게 청구서로 날아들었음을 서늘하게 지적한다.
이들 위기는 별개 해법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라는 총체를 제대로 이해해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다. 세계 역사를 하나의 시선으로 꿰뚫는 지적인 충만함을 넘어 현재 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탁 트인 시선을 갖출 수 있다.
문제는 절실하고 해답은 미약하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같은 면에서 이 책은 이 시계 제로의 시대를 담대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약 1만 2천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지질학적으로 '홀로세'라고 부른다. 이중 최근 2천년을 바로 떼어 '인류세'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저자인 라즈 파델과 제이슨 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현재를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로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본세 600년의 역사가 어떻게 구축됐는지, 그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지적 여정의 목적지는 명확하다. '세계 생태계'라는 개념 속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원과 진화, 불평등의 재생산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저자인 라즈 파델은 72년 영국 런던 출생으로 옥스퍼드대에서 정치철학과 경제학 학사, 런던정경대에서 석사, 코넬대에서 개발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경제학의 배신' '식량전쟁' 등이 있다.
제이슨 무어는 미국 빙엄턴대 사회학과 교수로 역사지리학과 정치생태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 '생명망 속 자본주의' 등이 있다.
백우진씨와 이경숙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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