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22] 광주역 행복주택

입력 2021.07.08. 15:55 김혜진 기자
길 향해 열린 아파트 단지, 사람 사는 활기 더하다
기존 광주역 담장 옆 골목길은 협소한데다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차량 한대가 지나다니기 매우 어려웠다. 소방도로를 확보할 겸 건물을 부지 안쪽으로 지었다. 넓힌 길을 따라 커뮤니티센터와 상가, 쌈지공원을 조성했다.

의식주(衣食住)를 말할 때 주(住)는 주거, 즉 '집'을 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도시 거주자는 '집'이라고 하면 아파트를 떠올릴 것이다. 아주 단순화해 얘기한다면 집이 모여 도시가 된다고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아파트는 현재 광주의 도시구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일 진대, 광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건축논의에서 아파트는 그리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고도성장기에 양적 공급에 치중해 우선 짓기에 바빴고, 그에 따른 여러 문제점들이 논의되고 있으나 개발논리가 우선이 돼 관성이 붙어버린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의 개발을 시도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 '아파트'와 '도시'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도시는 길을 따라 생긴다. 길 따라 사람과 물자가 흐르고 길이 만나는 곳에 흐름이 부딪혀 멈추거나 소용돌이치는 곳에 사람이 모여 시장이 생기고, 그러다 붙박이로 눌러앉는 사람이 많아지면 도시가 되는 것이 근대 이전의 모습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석탄을 먹고 쏜살같이 달리는 철마가 등장하자 새로 철길을 냈고 철마가 멈춰 사람과 짐을 쏟아내는 곳은 말이 쉬던 곳의 이름을 따라 역(驛)이라고 불렀다. 철길 연선은 철마가 지날 때마다 땅을 울려대고 시끄러운 기적 소리와 함께 연기 불똥을 내뿜는 탓에 살기에 적당한 것은 아니어서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는 잘도 자는 서민의 동네였다.

담장이나 울타리 없이 가로변을 향해 열려있는 광주역 행복주택의 모습.

세월이 흘러 철마는 기름을 먹는 말 없는 수레인 자동차에 밀리고 철길과 함께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났다. 지금의 광주역도 원래 위치에서 옮겨와 '신역'이라고 불렸지만 쏜살보다 더 빨리 달리는 고속열차 등장과 함께 광주의 관문 역할을 송정역에 내주고 역세권과 함께 쇠락했다. 현재 광주역 인근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공공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그 중 제일 먼저 추진된 것이 광주역 행복주택이다.

중흥 삼거리에서 안보회관 사거리로 가다 보면 딱 중간쯤 뜬금없이 웬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 뜬금없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원래 이 자리는 아파트를 지을 땅이 아니었다. 1969년 대인동 '구역'에서 중흥동 '신역'으로 이전하면서 넉넉하게 마련한 역 구내 부지 중 시설이 들어서지 않고 남아 있던 곳을 청년계층을 위한 행복주택 부지로 쓰기로 한 것이다.

철도역에 아파트라니 좀 낯설 수도 있지만 서울 오류역 행복주택이 먼저 추진됐고 서울2호선을 건설할 당시 신정 차량기지 위에 아파트를 지은 적도 있듯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광주역 행복주택은 행복주택 쪽으로 인도와 함께 부대시설을 계획해 걷는 속도에 맞춘 가로가 되도록 설계됐다.

얼마 전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된 대구까지 가는 철도의 시·종착역이 광주역이라고 하니 복합개발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어 개발이 가속화된다면 이 '뜬금없음'이 해소되는 시간이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시선을 옮겨 동서남북 한 바퀴를 훑어보면 광주역 행복주택만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은 아파트 단지들의 모습과 건물 벽을 제멋대로 뒤덮은 간판들이 크고 작은 스케일에서 동일한 시각적 무질서함을 보여주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하나씩 완료돼 갈수록 고층 아파트 단지와 미개발된 저층 구도심의 대비는 더 극명해질 것이다.

건축과 도시를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근대 이후로 지금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그 그릇을 짓고 부수고 또 새로 지었고, 거기에 담는 생활은 훨씬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생활이 바뀌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물리적 한계를 지닌 도시와 건축 구조물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때그때 고쳐 짓다 이런 모습이 된 것이다.

광주역 부지를 활용해 들어선 광주역 행복주택 모습

이전에는 오래된 것은 못 쓰게 된 것이니 부수고 새것을 지어야 한다고 봤지만, 지금은 못 쓰게 된 것이 아니라 레트로(retro)한 것이고 힙(hip)한 것이며 핫(hot)한 곳(place)이 되어 몸값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행복주택 꼬리에서 출발해 횡단보도를 건너 동쪽을 향해 푸른길을 걸어본다. 길 따라 양옆으로 꽤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연변의 구옥들이 아파트 단지보다 푸른길을 향해 적극적으로 열려 있는 모습이다.

오랫동안 아파트 설계를 하면서 끊임없이 들었고, 또 고민한 것은 바로 우리 아파트 단지의 폐쇄성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

근본적으로 '집'은 프라이버시 확보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개발이 민간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고민 없이 단지 경계를 처리한 결과이다. 근래에 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도형 생활가로' 조성이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데, 걸어 다니는 속도에 맞춰진 예전 골목길 또는 저잣거리의 활기를 조금이나마 되살리려는 시도이다.

광주역 행복주택은 1969년도 광주역 이전과 함께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한 북측의 주택지역과 폭 4m가 될까 말까 한 비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접해있었다. 조성 당시 집집마다 차 한 대씩은 가지고 사는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테니 보행 위주로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당장 불이라도 난다면 소방차가 들어갈 수나 있을까 걱정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고 광주도시공사가 시행하는 공공프로젝트는 더욱더 그러할 수밖에.

부지 경계를 따라 일정폭으로 셋백(set-back)해 차 두 대가 비껴갈 수 있는 폭으로 비좁은 도로를 넓히고 행복주택 쪽으로 인도와 함께 부대시설을 계획해 걷는 속도에 맞춘 가로가 되도록 하는 것이 계획팀의 의도였다.

지금 행복주택 앞 대로는 지하철 공사 중이라 혼잡하다. 아는 사람들은 정체를 피해 새로 낸 길을 따라 우회한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행복주택 쪽으로는 '연도형 주차' 가 차지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이지만 인근의 생활주차까지 고려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했으므로 넘어가자. 아쉬운 것은 가로에 면한 부대시설에 좀 더 적극적인 건축적 장치를 적용했으면, 좀 더 세부적으로 아기자기한 공간을 마련했더라면 하는 점이다.

물론 현재 상가와 어린이집을 빼놓고 비어있는 탓도 있겠지만 가로변 풍경이 밋밋한 것은 못내 아쉽다. 그래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대로변 모퉁이 상가(편의점이 들어와 있다) 앞에 파라솔과 의자 몇 개가 나와 있고 앉아서 맥주 한 캔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꼭 계획자의 의도대로 사용자가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만큼은 가로경관 활성화를 유도하려는 의도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모른다. 비대면이 익숙해진 세상에 도시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모습을 바꿔나갈까? 지켜볼 일이다.

남유식 디아이지건축사사무소 대표

남유식 건축가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도시가 상호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건축가이다. 전남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토문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현재 디아이지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대구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선수촌 아파트, 광주 U대회 선수촌 아파트, 광주 노사동반성장 지원센터, 광주 보건환경연구원 신청사, 전남도립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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