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혁 호남문헌연구회장 번역
당대 현실 반영 구제책 제시 주목
삶·학문·지조 등 관련 연구 큰 도움
고전은 우리 문화의 뿌리이자 사상의 보고(寶庫)다.
그러나 고전은 한문으로 표기돼 있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된 번역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조선 후기 장흥의 유학자로 활동한 간암(艮庵) 위세옥(魏世鈺, 1689∼1766) 선생의 시문을 모은 문집 '간암선생문집(艮庵先生文集)'이 주석을 붙인 국문으로 번역·출간됐다.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은 최근 간암 선생의 문집 '간암선생문'을 번역한 '역주 간암선생문집'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역주 간암선생문집'은 모두 4권 1책으로 구성된 시, 서(書), 잡문 등의 전문을 국역하고 주해한 것으로 모두 570페이지 분량으로 이뤄졌다.
위세옥의 자는 백온(伯溫) 호는 간암(艮庵) 또는 도천(陶泉)이고 본관은 장흥이다.
그는 1689년(숙종15) 서울에서 상원 군수를 지낸 위동전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위세옥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당시에 인현왕후를 배출한 명문 여흥 민씨 집안의 민승수 문하에서 이재·윤봉구·민응수·윤심형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했다.
그는 특히 서울과 장흥을 왕래하며 영조에게 6조 7실을 내용으로 하는 상소를 올려 질병과 기근으로 피폐한 호남 구제와 임진왜란 이후 남해안 해상 방어의 강화를 위해 남해 4도에 진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고향 장흥의 천관산 서쪽에 초당을 짓고 은거해 고을 풍속의 교화와 상부상조를 위한 향약을 창설하고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1766년(영조42)에 7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위세옥은 당대의 지식인으로 조선 후기의 국가 기강 해이와 재난에 시달리는 호남 연해민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구제책을 제시한 학자로 평가된다.
또 중앙 명사들과의 교유를 바탕으로 마땅한 스승이 없어 수준 높은 학문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후손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교량역할을 했다.
'역주 간암선생문'은 위세옥이 남긴 시문을 종가에서 대대로 보관해 오다가 간암이 떠난 지 201년이 되는 1968년 무신년에 간암의 후손들이 발간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이번 역주본은 그동안 조명되지 못했던 위세옥의 문학과 학문세계, 불우한 현실에 굴하지 않는 높은 지조와 강직한 정신을 엿볼 수 있어 관련 연구자들에 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흥문화원 고영천 원장은 발간사에서 "'문림의향 장흥 고전국역총서' 간행 연차사업으로 이 문집을 간행 보급하게 됐다"며 "이처럼 연차적 사업이 지속돼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문림의 전통을 계승하는 뜻 깊은 사업으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번역은 장흥 출신 한학자 이병혁 호남문헌연구회 회장이 맡았다.
그는 장흥 위씨 집안의 외손으로 광주시청에서 정년퇴직한 후 전남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고전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번역주석서로 '역주지지재유고'와 '역주남파집'이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전라도 장흥 도호부 수군 만호진 회령포 연구'와 '임진왜란 중 전라도 수군의 역할과 승전요인' 등을 발표했다.
장흥군은 지난 2017년부터 '문림의향 장흥 고전국역총서' 간행 사업을 진행해 '계서유고(溪西遺稿)' 번역을 시작으로 '만수재유고(晩守齋遺稿)', '제암집(霽岩集)' 등을 출간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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