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하고 싶은 수사만 하는 나주경찰

@류성훈 입력 2021.08.25. 18:36

얼마 전 경찰 수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80억원대의 법인 자금 횡령 및 사기 의혹을 고발하고, 증거자료도 힘들게 확보해 제출했지만 나주경찰이 사건을 지연시키고 축소·은폐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담당경찰에게 수십차례 수사를 요청했지만 1년 넘게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 오죽하면 언론을 찾았겠냐는 하소연도 곁들였다.

사실 제보 내용을 듣는 내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경찰이 증거자료까지 건네받은 고발사건을 지연·축소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경찰 수사에 대한 신뢰가 컸던 것은 상식에 기반한 것이다. 더욱이 수사권 조정으로 책임수사를 강조하는 등 경찰의 위상이 한껏 높아진 마당에 제보 내용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마저 들면서 제보자의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신문사 사회부장(현 취재3부)을 꽤 오래 맡고 있다. 그만큼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제보를 접하게 된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투성이에 상대방과 공무원이 유착됐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 팩트체크를 거쳐 기사화가 되고 사실이 바로잡혀지는 사례는 5%도 채 되지 않는다. 기자들이 제대로 팩트를 취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95%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거나 본인에게 유리한 말만 하는 사례로 시간과 공력을 뺏기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허탕이구나 지레짐작했었는데, 그러나 제보 내용은 팩트였다. '요즘에도 이런 경찰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고발인들의 주장처럼 나주경찰은 증거자료까지 건네받고도 무역업체 대표 등이 법인자금을 횡령한 것도 모자라 국가출연기금 보증서를 이용, 중고기계를 새 기계로 둔갑시켜 대금을 치른 뒤 페이백 받아 12억원을 빼돌린 의혹에 대해선 고발한 지 19개월이 되도록 손도 안 댔다.

그러면서 담당경찰은 고발인 측에게 '수사할 테니 기다려달라', '페이백 건은 잊어버렸다' 등의 해명을 이어나갔다. 한발 나아가 '광주지검 장모 검사가 고발인 의견 위주로만 수사했다. 피고발인 입장도 들어라고 했다'면서 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인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나주경찰이 상부에 허위 변명까지 했다는 점이다. 나주경찰은 무등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페이백 건은 고발장에 없었고 관련 증거자료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가, 곧바로 '고발장에 국가보조금이라고 적혀 일반 횡령사건과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 별건으로 처리하려 했다. 고발장을 새로 제출하면 페이백 의혹을 수사하겠다'는 상식을 벗어난 입장으로 바꿨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나주경찰서는 사실파악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언론의 객관적인 문제 제기를 무시하는 것은 백번 양보해 그렇다 치더라도, 고발인들이 저렇게까지 수사를 원하고 있는데도 나주경찰서가 이를 철저히 무시하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다. 언론 지적에도 끄떡하지 않는 나주경찰인데 하물며 고발인들의 의견에 귀 기울였을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나주경찰이 지역민들에게 불신을 샀던 사례는 더 있다. 올 6월 서장과 간부 경찰관 3명이 코로나 복무지침을 어기고 골프를 쳐 감봉처분을 받았고,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한 경찰관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의자와 돈거래를 한 사실이 불거져 직위해제되는 등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나주경찰의 고발수사 지연·축소·상부 허위보고가 공론화된 지 보름이 돼서야 전남경찰청은 사실관계 확인 절차에 돌입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명명백백한 진상파악을 통해 억울한 사람이 없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크다. 간단하다. 나주경찰은 왜 고발사건을 19개월동안 수사하지 않고 증거자료도 부정했는지만 밝혀내면 된다.

최근 전국 최초로 광주고검 영장심의위원회에서 영장청구 적정 결정을 받아낸 전남경찰청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 검찰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로 됐지만 어쨌든 전국에 전남경찰청의 수사역량을 여실히 보여줬다.

더구나 김재규 전남경찰청장은 현 정부 초기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을 맡아 '수사구조 개혁 설계자'로 불릴 만큼 경찰 스스로의 주도적인 수사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진정한 수사의 주체는 경찰이라고 국민들은 신뢰하고 있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김 청장이 수장으로 있는 전남경찰청이 증거까지 가져다준 고발사건 하나 제대로 수사하지 못해 고발인들의 불신을 키우고, 지역언론에서 연일 보도한 '나주경찰 고발수사 묵살' 사안에 대해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수사권 괜히 줬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전남경찰청 감찰부서는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결과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경찰에게 수사권이 주어진 올해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나주경찰이 손상한 경찰에 대한 신뢰를 한 단계 높이는 기회로 만들기를 바란다.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몇십배 노력해도 회복하기 쉽지 않다. 류성훈 취재3부장· 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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