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공사비 85% 싹둑 '15%의 비리 복마전'

@류성훈 입력 2021.06.23. 13:10


2천282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시공을 수주한 1군 건설업체가 재개발 철거 공사를 하도급 업체에게 넘길 때 얼마나 뗄까?

무려 65%를 뚝 떼고 넘겨준다. 수급받은 하도급업체는 다시 재하도급을 주면서 또 60%를 후려쳤다. 두 번의 하도급이 이뤄지면서 공사비는 당초 책정된 예산의 85%가 싹둑 잘렸다. 물론 재하도급은 불법이다.

보름 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붕괴, 그 잔해가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승객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학동 참사, 총체적 부실의 민낯

붕괴 참사로 인해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철거 공사 현장의 부실 구조가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참사 배경에는 철거 공사가 허술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현장감리도 유명무실했고 재개발 현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광주 동구를 비롯 관계 당국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행정의 책임도 크다. 특히 동구 공무원은 청탁을 받고 감리업체를 선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들이 수차례 제기한 민원을 무시했고, 철거 현장 코앞에 위치한 시내버스 승강장조차도 옮기지 않았다. 누구 하나 철거 과정의 안전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저 구도심 한 동네를 허물고 초고층으로 뻗은 유명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상전벽해로 변신하는 것만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의혹이 집중되는 건 재개발조합 관련자와 철거업체의 유착관계다. 학동4구역에서는 하도급과 불법 재하도급을 거치는 과정에서 철거 공사비용 가운데 무려 85%가 사라졌다.

3.3m²당 28만원에 수주한 현대산업개발이 한솔기업에 10만원에 하도급주고, 서울 소재 한솔기업은 다시 광주 업체인 백솔건설에 4만원으로 후려쳐서 재하도급을 맡겼다.

그렇다면 사라진 '10분의 8.5' 가량은 오롯이 시공사와 한솔의 이윤으로 남았을까? 무성한 소문처럼 조폭이 개입하고, 재개발조합 측으로 일부 철거 공사비가 흘러들어갔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학동 철거 참사 현장에서 '철거왕'으로 불린 이금열 회장의 다원그룹 계열사인 다원이앤씨가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철거와 조폭 연루설이 재점화했다. 여기에 5·18구속부상자회장까지 지냈던 문흥식씨가 조합장 선출과정까지 개입하며, 철거업체 선정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기 전 미국으로 도피한 일까지 벌어졌다. 조폭 연루설에 시달렸던 문씨는 학동4구역 바로 인접 사업지인 학동3구역 재개발 철거업체 선정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거액을 받아 1년의 실형과 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던 터라 철거공사와 조폭 연루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문씨가 대가를 전제로 전국구 철거회사인 다원그룹 측을 학동4구역에 끌어들였을 것이라는 의혹이 짙은 대목이다.

또 하나 의구심이 드는 점은 한솔, 다원이앤씨와 백솔 간의 연결고리이다. 일반건축물 철거와 석면 철거공사 모두 굴삭기 기사가 대표인 백솔에서 불법으로 재하도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권, 불법·유착 커넥션 의혹 밝혀야

백솔은 홀로 철거공사를 도맡아 계획서상의 작업 절차를 어기면서 날림 공사를 진행했다. 또 백솔은 석면 철거면허가 없는데도 다원이앤씨로부터 재하청을 받았다. 그렇다면 서울 철거업체와 '철거왕' 계열사가 광주의 영세 신생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이유는 뭘까. 다원이앤씨와 한솔 사이에 나눠먹기식 이면계약이 있을 수도 있다. 다원이앤씨와 한솔이 사실상 같은 회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일감을 따낸 백솔은 당초 책정된 비용의 15%만으로 공사를 마쳐야 하고, 이윤도 남겨야 했다. 철거 과정에서 나온 고철 등을 처리하면 어느 정도 수입이 생기지만 하도급에 하도급을 또 주고 단가마저 후려치기한 공사를 제대로, 적법하게 했다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공사에 필요한 인력을 최대한 줄여 인건비를 아끼고 속도전으로 공사기간을 확 줄이는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학동4구역 참사는 정치권, 공무원, 조폭, 재개발조합이 연루한 까닭에 살인적인 공사비 후려치기와 불법 재하도급 등 붕괴의 근본적인 원인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단 학동4구역 문제만은 아니다. 북구 운암3단지 재건축 철거 현장에서도 비슷한 불법 철거방식이 적발돼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고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엄정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붕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될 것이다. 류성훈 취재3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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