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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자치단체장의 말, 결코 가볍지 않다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본부장 입력 2020.11.18. 14:38 수정 2020.11.18. 19:56


기억을 더듬어보면 민선시대 자치단체장들의 스타일도 다양하다. 그 중에 유독 서민단체장을 표방했던 분이 있었는데, 재임 당시 출근시간 활용을 놓고 벌였던 논쟁이 새롭다.

아침 출근길, 1시간 남짓 관사에서 청사까지 걸으며 휴지를 줍는 그의 일상이 늘 도마위에 올랐다. '단체장의 1시간은 일반인의 1시간과 비중이 다를텐데, 차라리 그 시간에 차 안에서, 혹은 집무실에서 지역의 정책비전을 구상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변함이 없었다. 결국 재임기간 내내 그럴싸한 그랜드비전 하나도, 서민단체장으로서의 큰 족적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장황설을 꺼낸 이유는 자치단체장이 갖는 무게감 때문이다.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그들이 하는 말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견줄 수가 없다. 한마디 한마디가 시민들과의 약속이고 정치적 결정체다. 말에는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정치인은 하수다. 단체장의 허언은 그 피해가 본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경험 속에서 그런 단체장들을 적잖이 만나왔다.

시-도 행정통합 논의가 지역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단체장들이 쏟아낸 말의 성찬도 주목을 받았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지난 9월 "광주·전남은 천년을 함께해 온 공동운명체다. 지금처럼 각자도생으로 경쟁하면 공멸할 뿐"이라고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김영록 전남지사는 "시·도 행정통합이 지고지순한 선은 아니다"며 거리두기에 나섰다. 광범위한 공감대 형성과 의견수렴이 먼저라는 것이다. 이후 다양한 논쟁이 있었지만 두 단체장의 입장은 이런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시-도 행정통합에 적극적인 이 시장, 보다 숙고하는 신중모드 김 지사로 요약된다. 뒤늦게 광주시와 전남도가 합의를 통해 '선 용역조사 후 의견수렴'이라는 로드맵을 만들었지만 자칫 어깃장이 난다면 단체장들의 말이 시민들의 혼선만 가중시킬 게 뻔하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광주 민간공항의 무안공항 이전통합 문제도 한 짐이다. 이 사안도 따지고 보면 단체장의 말에서 비롯됐다. 이용섭 시장과 김영록 지사는 지난 2018년 8월 광주전남상생발전위원회에서 광주 군공항 이전과 민간공항 이전통합에 관한 큰그림을 제시했다. 무안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해 2021년 말까지 광주 민간공항을 무안으로 이전하는 업무협약이 골자다. 광주 군 공항 이전과 관련해서는 전남도가 화답했다. 김 지사는 상생발전위 인사말에서 "민간공항이 이전할 경우 군 공항도 전남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공감한다. 전남도는 이전지역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군 공항이 조기에 이전되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둘 다 주민들을 상대로 한 말이었고 약속이었다.

그러던 게 군 공항 이전이 답보상태에 머물면서 상황이 틀어졌다. 광주에서는 군 공항 이전 없이 민간공항을 이전할 수 없다는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남 쪽에선 당초 이전 약속을 지키라고 아우성이다. 광주시장 직속 시민권익위원회는 80%에 육박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민간공항 이전 시기 재검토'를 권고했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군공항 이전부지에 대해 명확한 합의를 이룬 후에 이전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광주시는 이 정책권고에 대한 이행계획을 한 달 안에 세워야 한다. 이 시장의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권고안을 수용하자니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거부하자니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옹색한 형국이다. "민간공항 이전 문제는 단순한 일차방정식이 아닌 연립방정식"이라는 말에 이 시장의 복잡한 속내가 담겨 있다.

사안이 꼬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는 가르침이 있다. 단체장의 말과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도 대원칙이다. 두 단체장이 약속을 지키는 길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시장이 민간공항 이전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전남도가 군 공항 이전에 관한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다면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국방부 탓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 두 단체장 모두 쉽지는 않겠지만 지역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용단을 발휘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선택지는 좁아진다.

지키지 못할 말이나 약속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말이 앞서는 정치인치고 민심을 얻는 경우도 드물다. 말을 아끼는 단체장은 깊이가 남다르다. '바위는 침묵으로 말한다'는 고은 시인의 시구처럼 말의 무게를 지켜가는 단체장을 고대한다.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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