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상원이와 가현이

@정유하 나산실용예술중학교 교장 입력 2021.01.11. 16:45

다음 주면 졸업을 할 상원이와 가현이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되어 울뻔했다. 상원이는 가정의 어려움을 힘겨워하며 거의 2년 동안 마스크와 머리카락을 커튼삼아 온 얼굴을 가리며 살아온 아이다. 사실 상원이는 세상을 살아내는 것이 너무 버거워 보이는 점만 뺀다면 여러모로 재능도 많고 예의 바른 아이였다. 1년을 얼굴의 2/3를 가리는 등산용 마스크로 가리고 다니다 마스크를 벗고는 머리를 길러 온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그러다 2학년 2학기 말, 학교의 축제에서 상원이는 세익스피어 연극 리어왕에서 주인공역을 맡아 연기하면서 머리를 말끔하게 잘랐다. 얼굴을 가린 채로 리어왕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용기를 낸 것이다. 동료, 후배들과 선생님들은 얼굴을 보여주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상원이는 멋진 목소리와 노련한 연기로 학부모, 지역민, 동료와 선생님들을 사로잡았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더 이상 머리로 얼굴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이전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3학년이 되면서 전학 온 가현이는 지쳐보였고 우수룩한 표정에 생기가 없었다. 전학과정에서 나와 여러 차례 면접을 해서인지 몇 차례 교장실을 찾아왔다. 전학생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나는 자주 말을 걸어 잘 지내는지 묻기도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묻는다. 그러다가 그의 꿈이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현이 머릿속에는 영화밖에 없었다. 우리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뭘 해야 하는 지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전 학교에서 이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까싶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우선 공부부터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조언이 맞겠지만 꿈이 주는 삶의 의욕보다 더 나은 삶의 동기부여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나는 항상 학생들의 꿈을 지지한다. 그는 여름방학에 영화캠프를 떠났고(훌륭한 부모님이시다) 아이의 얼굴은 점차 밝아지며 멋지게 변하고 있었다.그리고 가을 학교 예술프로젝트 때 그 애는 짧은 영화를 만들었다.

며칠 전 가현이는 내게 "상원이가 정말 멋있어요"라고 말했다. 뭐가 멋있어? "연기를 너무 잘해요" 그래? 이 정도의 대화에도 나는 마음이 뿌듯했다. 중3 동기를 보고 멋있다고 하다니…가현이가 우리 학교에 와서 잘 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급식실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다 상원이를 만났다. 상원아, 가현이가 너보고 멋있다고 하더라. "그래요? 그런데 사실은 가현이가 더 멋있어요" 왜? "가현이는 자신의 희망을 말할 때 자기는 175㎝만큼만 크고 싶대요." 가현이는 이미 키가 175㎝쯤 되는 아이이다. 왜? "자기가 영화감독이 되어서 배우하고 무대에서 상을 받을 때 감독이 돋보여서는 안되니까, 배우가 더 돋보여야 하니까 그렇대요." 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 애들이 어떻게 이렇게 멋있을 수가 있을까? 두 아이는 꿈을 실현시켜가면서 동료에게 찬사를 보내고도 남는 넉넉한 자존감을 가진 아이들로 성장했다.

선생님들의 지지와 사랑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상원이와 가현이의 성장 말고도 새로 전학온 2학년 학생은 두 번째 본 시험에서 평균이 45점이 올라 본인도 놀라고 우리도 놀랐다. 내년에는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의 꿈을 거의 무조건 지지한다. 어떤 꿈도, 어떤 진로도 강요하지 않고 진지하게 듣고 같이 환호하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 학기, 혹은 일 년에 한번쯤은 꿈이 바뀌고 점점 구체화되어간다. 우리는 아이들의 진로를 간섭할 필요가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누가 미래를 장담할 수 있으며 누가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정상적인 학교에서 학생들은 지지와 사랑,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인성과 실력, 꿈을 가지고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 정유하 나산실용예술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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