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동지(冬至), 다시 시작하는 날

@김지선 각화중학교 교사 입력 2020.12.21. 11:05

영하를 밑도는 날씨에, 아침 등교 맞이가 상당히 힘들어졌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검은 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쓴 아이들은 더더욱 얼굴 알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가장 힘든 것은 차가워진 공기 때문에 열화상 카메라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습기 찬 안경을 내리고 앞머리를 올리고서야 겨우 체온 체크가 가능하다. 더뎌진 체온 측정에 줄은 길게 늘어서고 찬바람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차가워진 손에 알콜성 손소독제 바르기를 무척이나 주저한다. 어쩔 수 없이 손소독제 앞에 서서 '손소독제 바르세요', '손이 깨끗해야 좋아하는 사람 손도 잡을 수 있다'는 등 강압적이거나 말도 되지 않는 말로 학생들을 구슬린다. 급하게 짜낸 아이디어로 열화상 카메라가 있는 중앙 현관에 전기히터를 3대 이상 가동시키기로 했다. 열화상 카메라도 올라간 온도에 조금은 빠르게 반응하는 것 같았고, 체온 측정을 기다리는 학생들도 짧은 시간이나마 손을 녹일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12월, 어느 중학교의 아침 풍경이다.

이제 2020년도 10여 일 정도 남았다. 어서 빨리 보내버리고 싶으면서도, 이 상황 그대로 보내버리기엔 너무도 억울한 1년이었다. 돌아보면 2월 새 학기 준비 연수를 받으며, 선생님들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시간 단위로 100명, 200명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 깜짝 놀라고 두려워했던 그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3월이 되고 1~2주 늦춰지던 개학이 4월까지 연기되었고 결국 학년별 순차적인 온라인 개학으로 2020학년도가 시작되었다. 교사들은 온라인 개학에 대비한 원격수업에 대한 연수를 받으며 달라진 시대의 변화를 체감했다. 그사이 급격하게 오르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조금씩 안정세를 찾으면서 5월 중순 고3부터 등교수업을 시작했다. 중학교는 중3부터 5월 말, 6월 초까지 등교수업이 완료되었다. 랜선 너머로만 만났던 학생들을 대면했을 때의 긴장과 떨림, 기쁨은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원격으로만 진행했던 수업 과정에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습역량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었다. 학생들을 만나서 1~2주는 그동안 진행했던 수업내용을 확인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되었다. 대면 수업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어떤 모둠 활동도 허락하지 않은 '방역'을 중심에 둔 수업은 자칫 강사 중심의 학원 수업과 별반 차이를 두지 못하는 주입식 교육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느끼게 했다. 그렇게 수업에 고민하던 사이 북구 지역의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7월, 2주 이상 다시 원격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with corona'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절이었다. 이제는 수시로 원격수업에 들어갈 수 있음을 준비하고 수업도 평가도 그에 맞게 변화시켜야 했다. 어렵게 평가를 마치고 들어간 여름방학도 마음껏 누릴 수는 없었다. 광복절 집회 여파에 따른 인근 교회발 확진자 증가로 결국 개학도 원격으로 시작되었다.

전면 원격수업, 부분 등교로 시작한 2학기! 10월 이후 거리두기 1단계로 변화하면서 다시 전체 등교가 시작되었다. 소규모 학교의 기준이 300명 이하로 조정되면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거리두기를 전제로 한 민속놀이와 체험 활동 중심의 학년별 체육대회와 2, 3학년 지필평가, 온라인 학생회 선거 등을 무사히 치러냈다. 그리고 수능 이후 1,000명 대가 넘어서는 전국적인 확진자 증가세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으로 현재 2/3 등교를 실시하고 있다.

오늘은 12월 21일. 24절기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어릴 적 단순히 팥죽을 먹는 날로만 여겼던 길고 암울한 동짓날. 어른이 되고 교사로 살아가면서, 이제는 점점 길어질 해의 길이와 코로나19 종식을 향한 희망의 길이가 비례한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그 길고 어두운 시간을 건너고 있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새로운 날들을 준비하고 있다. 시쳇말로 '바닥을 친다'라는 말이 있다. 2021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우리는 잘 이겨냈다고, 잘 견뎌왔다고 어깨를 다독이며 서로의 온기를 나눌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김지선 각화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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