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자귀나무 이파리

@김현주 광주인성고 교사 입력 2020.08.17. 16:25

자귀나무가 작은 분수처럼 꽃을 뿜어내는 계절과 함께 축축한 지난 날을 내어 말리라는 듯 햇살은 뜨거웠다. 전일빌딩 245 3층 시민갤러리에서 열리는 미술작품 전시회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금남로에 걸린 현수막과 태극기는 광복절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장마가 그치고 쨍쨍한 햇빛으로 광복 75주년은 오고 있었다. 코로나19 아키이빙을 위한 '또 다른 일상, 그림으로 기억하기'라는 주제로 열리는 미술 작품 전시회였다.

'늘 그렇듯' 체온 측정과 연락처를 남기는 것으로 작품 감상은 시작되었다. 스무 편의 다양한 작품들 앞에서 멈칫멈칫 발길을 옮기며 코로나 시대에 자기 돌아보기를 하고 있는 작품들을 보았다. 몇몇 작품들이 가슴에 안겼다. 그중에서도 성혜림의 '또 다른 일상'은 인상적이었다. 고요한 방안에서 마스크를 쓴 채, 혼자 잠든 것인지 사색에 잠긴 것인지 모를 한 소녀가 소통에 대한 바람을 한 손에 휴대폰으로 꼭 쥐고 있는 작품 앞에서 우리 내면의 실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저마다의 내면으로 침잠하고 있으나 포기할 수 없는 그리움과 만남이 있는 것이다. 애틋함을 감추고 있는 듯 눈을 감고 적막한 시간에 잠긴 소녀의 머리 위로 열린 창과 파란 하늘은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보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같은 제목이 붙은 두 작가, 김선희, 송영학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한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일상에 대한 그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꿈에서 그렇듯 분명치 않은 이미지들이 겹치는 모습을 그려낸 듯한 그림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에 대한 여정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이었다. 내게는 이 두 작품의 의미가 같게 다가 왔다. 일상이 꿈이 되고 꿈이 일상이 된 그런 시절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희미해져가는 일상이지만 그 일상으로의 회복이 꿈이 되어버린 시절을 살고 있다. 이 그림들 앞에서 생각났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한 교사가 들려 준 이야기가. 코로나보다 평범했던 나의 일상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더 두렵다 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지만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올지 모를 감염의 순간이 오면 자신을 주목하기 시작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코로나를 조심한다기 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무섭다는…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며 가장 경계하고 싶었던 혐오가 두려움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장맛비는 우리 삶의 공간으로 넘쳐 흘러 들었고, 재난 문자는 우리 의식의 공간으로 범람하기에 우리 삶엔 불안이 위태롭게 넘실대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시시푸스의 바윗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으면 어디선가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든 다시 확산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 바윗돌 앞에 다시 서기 위해 올라왔던 산 정상을 등지고 산 아래로 돌아 서서 터벅터벅 내려오는 그 희망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해가 지는 전일빌딩 옥상 전일 마루에서 내려다본 구 도청앞 5·18민주광장에선 분수대가 화려한 불빛을 머금은 채 더위의 포위를 뚫고 솟구치고 있었다. 마치 낮에 보았던 연분홍 자귀나무 꽃 한 송이가 큼지막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자귀나무의 이파리들은 해가 지면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잠에 든다고 하는데 자귀 나무의 잎들은 마주보기로 나와 있어서 겹쳐질 때 홀로 남는 이파리가 없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 자귀나무 이파리들이 잠드는 모습은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며 돌아가고 싶은 지난날이다. 김현주(광주인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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